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24일(현지시각) 폭격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칸유니스/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가 18일째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병원 마비에 이어 질병까지 확산되며 최악의 보건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이 지역의 유일한 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지 2주가 지나면서 병원들이 속속 운영을 중단하고 약국들도 의약품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4일(현지시각) 연료 부족으로 가자지구의 병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가동을 멈췄다고 밝혔다. 이 기구의 동지중해 긴급 대응 책임자 릭 브레넌은 국제사회를 향해 “인도주의적 활동의 지속, 확대, 보호를 위해 무릎 꿇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도 이스라엘의 폭격과 대규모 피란 인파 때문에 보건 시스템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는 가운데 30곳의 의료 센터가 운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 “환자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집중되고 있는 북부 지역의 베이트하눈 병원은 이날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이 병원의 아테프 알카흘루트 병원장은 “(비상 발전기 가동에 필요한) 연료를 구하지 못하면, 가자지구 북부 지역의 환자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북부의 최대 민간 병원인 인도네시아 병원도 집중치료실 같은 필수 시설을 뺀 나머지 모든 시설의 운영을 중단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소속의 메다트 아바스 박사는 “비상 발전기 가동에 필요한 연료가 바닥나면서 수술실, 집중치료실, 응급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다”며 “병원 복도에서 휴대전화기의 빛에 의존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으며 마취도 못한 채 치료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가자시티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도 더이상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병원의 간호학과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병원이 더는 병원이 아니다. 사람들이 바닥에 침구를 깔고 누워 있고 구급차가 들어오는 입구만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간호사들은 모두 탈진 상태”라며 “폭격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을 내보내지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 대피소 주민들 폐 감염증, 발진 호소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북부 주민이 대거 몰리고 있는 남부 지역에서는 사람이 밀집한 대피소를 중심으로 각종 질병이 번지고 있다.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의 공중보건 의사 나헤드 아부 타에마는 “대피소로 쓰이는 학교 건물 등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다”며 “이런 곳들이 질병 확산을 부르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시 대피소에 머무는 주민들이 소화기 질환, 폐 관련 감염증, 발진 등을 호소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는 문을 연 약국들을 찾기도 쉽지 않으며 특히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약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북부 지역에서 남편, 3명의 자녀와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여성인 소주드 나짐은 유엔이 제공한 임시 텐트에서 9일째 머물고 있다며 “낮에는 햇볕 아래 노출된 텐트가 아주 뜨겁고 벌레들도 극성을 부린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춥지만 담요도 부족하다며 “아이들이 모두 아프다”고 덧붙였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긴급하게 연료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내일(25일) 밤 가자지구에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연료 공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하마스가 연료를 작전에 사용하기 때문에 가자지구에 연료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하마스가 난민구호기구에서 훔친 연료를 돌려주고 병원에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