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이스라엘 근처 동지중해에 파견된 미국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 갑판에 전투기들이 도열해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이 시작된 뒤 중동에 주둔 중인 미군을 향해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중동 전역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군사적 경계 태세를 높이는 등 우크라이나·대만해협에 이은 ‘제3의 전선’에 깊이 말려드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3일 “시리아 서부 탄프에 위치한 미군 주둔기지를 겨냥해 두대의 자폭 드론(무인기) 공격이 있었다. 부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기지는 앞선 18일에도 비슷한 공격을 당했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기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서부에 자리한 아사드 공군기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세번 드론·로켓 공격을 당했고, 북부 아르빌의 하리르 공군기지도 18일 이슬람 무장단체의 표적이 됐다.
미국은 이 공격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며 강한 견제구를 던졌다.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며칠간 이란이 후원하는 대리 그룹들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있는 미군 기지를 상대로 로켓과 드론 공격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공격이 상당한 수준으로 고조될 가능성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 단체가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이란 정권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란이 경우에 따라 이들의 공격을 적극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사실도 안다”고 강조했다. 시엔엔(CNN)은 또 다른 미국 고위 관료의 말을 따 “이란이 이슬람계 무장 민병대에 미국이나 이스라엘 목표물을 공격해도 된다는 지침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내 미군 기지들이 이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으로부터 잇따라 공격받고 있는 것은 지난 7일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지지 입장을 밝히고, 2개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했다. 또, 현지에 주둔 중인 미군 기지를 향한 잇단 공격을 막기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등의 추가 배치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잇단 공격은 미국에 심각한 고민을 안기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향후 본격적인 전면전에 돌입하면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 역시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들을 공격한 무장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직접 군사적 행동에 나서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중동에서 발을 떼고 중국과 ‘전략 경쟁’에 집중하려던 미국의 세계 전략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요미우리신문은 24일 “미국이 이스라엘 지지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친이란계 이슬람 무장세력이 시리아·이라크 등에 주둔한 미군을 향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정세가 긴박해지면서 미국도 군 병력을 추가 파견하는 등 ‘중동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헤어나오려던 중동이란 수렁에 다시 빠지면, 우크라이나(러시아)와 대만해협(중국) 등을 더해 세 방면의 적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