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 연합뉴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 지 나흘째를 맞은 가운데 중동의 맹주이자 아랍연맹(AL)을 이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편에 서겠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다. 7일 공격을 감행한 하마스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큰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이나 미국과는 선을 긋는 견해를 밝힌 셈이어서 그동안 이어온 사우디-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 협의는 당분간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됐다.
10일(현지시각) 사우디 국영통신(SPA)에 따르면, 이날 새벽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과의 전화 회담에서 “사우디 왕국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와 존엄한 삶을 위해 노력하며, 희망과 열망을 실현하고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국민들 편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왕국은 계속되는 긴장을 멈추고 확전을 막기 위해 모든 국제·지역사회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피하고 국제법을 고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압바스 수장은 이에 대해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정당한 대의를 옹호하기 위한 사우디의 확고한 입장을 높게 평가하며 왕국의 리더십에 가슴 깊이 감사함을 표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하루 전인 9일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 주변국 정상들과 통화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 자리에선 ‘이성의 목소리’가 우세해야 한다는 데 주변국 정상들과 뜻을 모았다.
사우디가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한 참상을 목격하고도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면서 그동안 조심스럽게 이뤄진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 협의가 당분간 진전되기 힘들게 됐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미국에 안보조약 체결을 요구하는 등 국익을 앞세우면서도 ‘아랍의 대의’를 저버리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달 20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대해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거래다. 매일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진지한 것 같다”는 인식을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이 지역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누구와도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건국 이래 숙원이던 미국의 법적 구속력 있는 안전보장 약속과 아랍의 대의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던 사우디의 시도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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