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폭염이 몰아치고 있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한 남성이 17일(현지시각) 분수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일부 지역 기온이 50℃를 넘은 데 이어 지중해 주변 유럽에도 45℃ 이상의 폭염이 몰아칠 것으로 예보됐다. 지구촌 북반구 곳곳에서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은 1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사막 지역의 기온이 16일 53℃를 넘기고,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싼바오의 최고 기온도 52.2℃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선 18일 최고 기온이 45℃를 넘어설 것으로 예보됐다.
그에 따라 이탈리아 보건부는 로마·피렌체 등 23개 도시에 폭염 경보를 발령하고 주민들에게 “사상 최고 수준의 폭염에 대비할 것”을 촉구했다. 로마의 기온은 18일 42~43℃까지 오르고, 사르데냐 섬의 기온은 46℃를 넘길 것으로 예측됐다. 이탈리아 국립 기상청의 카를로 카치아마니 청장은 “이번 폭염은 극도로 예외적인 것”이라며 “40℃를 넘는 날들이 이어지는 등 아주 심한 고온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칸반도의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최고 기온 43℃의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당국이 폭염 경고를 10일 더 연장했다. 인접한 코소보 정부도 이날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스페인 기상청은 남부 지역의 최고 기온이 42℃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 보건청도 최근 폭염이 당분간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중해 지역에 몰아친 이번 폭염은 ‘케르베로스’라고 이름 붙여진 고기압의 영향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영국 레딩대학 소속 기후과학자 해나 클로크는 “남부 유럽에서 크게 발달한 뜨거운 공기층이 이탈리아와 주변 국가를 거대한 ‘피자 화덕’으로 바꿔놓았다”며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이 고기압은 당분간 계속 머물면서 바다와 땅을 덥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영국·프랑스·스페인에 인접한 북대서양 바다의 수온도 예년보다 3℃ 이상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영국의 기온이 평소보다 5℃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전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산불도 번지고 있다. 대서양에 위치한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서 15일 시작된 산불이 강한 바람 때문에 잡히지 않으면서 17일까지 4600㏊의 산림을 태웠다. 그리스에서는 수도 아테네 인근의 두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주민 200여명과 여름 캠프에 참가했던 어린이 1200여명이 긴급 대비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오늘이 진짜 힘든 여름의 시작이다. 더 힘든 날들이 이어질 것이 확실하고, 산불도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며 “이는 날로 더 심해지고 있는 기후 위기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국민들에게 시민 보호를 위한 당국의 조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연구소의 기후학자 로베르 보타르는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이런 고온에 대비할 준비가 안된 집에 사는 취약 계층의 건강”이라며 “이런 상황에선 수많은 사망자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 보건 연구소’ 등의 연구진은 지난 10일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실은 논문에서 유럽이 가장 더웠던 지난해 여름(5월30일~9월4일) 동안 더위 때문에 숨진 이가 6만1672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힌 바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세계 많은 지역에서 오늘이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기후 위기는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지금 바로 나타나고 있는 사태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지금 바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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