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남부군관구 사령부를 떠나면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용병 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을 이끌고 반란을 시도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반란 중단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어 자신의 시도를 ‘정의의 행진’이라고 합리화했다.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내 모병 사무소의 문을 여는 등 활동 재개에 나섰다.
프리고진은 26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한 음성 메시지에서 “우리는 불의 때문에 행진에 나선 것이지 우리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나선 게 아니었다”고 주장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피를 흘릴 게 분명해진 순간 행동을 멈췄다”며 항의성 행진이었다는 점도 행동 중단의 이유였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그룹 소속 전사들이 24일(현지시각) 탱크를 동원해 러시아 남서부 국경 인근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AP 연합뉴스
그는 지난 23일 밤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800㎞가량 진격한 것에 대해 “지난해 2월24일(우크라이나 침공 개시일)이 어떠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문가 시범 수업’(마스터 클래스)이었다”며 “이번 행진으로 인해 국가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드러났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자신이 어디 있는지, 벨라루스로 망명할 것인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반란을 중단하면서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벨라루스로 망명하기로 했으나,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반란 중단 이후 바그너그룹 용병들이 다시 군사 작전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일부 모병 사무소도 다시 문을 열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바그너 그룹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일부 병사들이 이미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내 기지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그는 “용병들이 행진 이후 전열을 가다듬고 식사를 하며 무기를 점검하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것 같지만, 여전히 완전 무장 상태”라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은 이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중부 사마라,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 내 5개 모병 사무소 문을 다시 열었다. 사마라 사무소의 관계자는 “모든 것이 정상이며 업무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보시비르스크 모병 사무소 앞에는 용병 모집 광고 포스터가 내걸렸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의 한 군사 분석가는 흑해 연안 크라스노다르에 있는 바그너 그룹의 훈련소도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그너 그룹 요원들이 철수하지 않고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아르티>(RT) 방송 인터뷰에서 두 나라가 바그너 그룹 문제로 러시아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군사 교관 일을 하는 수백명은 업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그너 그룹의 반란에 서방의 첩보기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러시아 정보기관이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그너 그룹 반란 이후 러시아 정부의 용병집단 통제가 강화될 걸로 예상되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 아래서 이론가로 활동했던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전 보좌관이 용병집단 같은 민간 군사기업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수르코프는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민간 군사기업은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라며 “이는 러시아의 정치·행정·군사 문화와 완전히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러시아 대통령실 제1 부실장으로 있으면서 주요 이론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에는 바그너 그룹 외에 패트리어트·레두트 등의 용병기업과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구성한 사병집단 포토크가 참여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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