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내년 봄 러시아 대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선을 노릴 수 있을까? 이전까지는 푸틴 대통령 재선에 대한 의문을 품는 이가 거의 없었지만,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와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으로 다른 시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 반란이 비록 하루 만에 끝나긴 했지만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는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과 가까운 러시아 언론인 콘스탄틴 렘추코프는 푸틴 대통령 측근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내년 3월 열릴 예정인 러시아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고 설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2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렘추코프는 바그너 그룹 반란 사태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엘리트 집단의 부와 안보에 대한 ‘보증인’으로서 지위를 잃게 됐다며 “이제는 엘리트들은 더 이상 무조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2036년까지 6년씩 두 차례 더 대통령을 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2020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당시 “안정”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해 그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러시아의 “안보”였다. 하지만, 이번 반란 사태로 더이상 국가의 안정과 안보를 강조하기는 어렵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 부대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애초에 차단하지 못했고,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실패해 통제력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용병들이 모스크바로의 진격을 멈추는 대신 처벌을 면해줬다. 본인이 “반역자”라고 부른 이와 ‘정치적 타협’을 한 꼴이 됐다. 당장 위협은 피했지만 부하의 불충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지도자’로서의 명성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정치 분석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 전 크렘린 고문은 이번 사태가 푸틴 대통령에게 “실존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항상 자랑스러워 한 것은 러시아의 “견고함”과 “정치적 안정”이었다며 “이는 시민들이 그를 사랑한 이유인데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막는 데 실패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 군 수뇌부에 책임을 물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가능성도 있지만, 이런 방법 역시 ‘딜레마’다. 프리고진이 비난 대상으로 삼은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엘리트를 제거하는 것은 곧 푸틴 대통령이 “반역자”라고 부른 바그너 그룹 수장을 옹호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푸틴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내부의 가장 힘이 있는 이들 상당수가 그들의 운명이 대통령, 그리고 그가 만든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라며 “희생양 찾기는 러시아 엘리트층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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