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어바이론먼트가 만든 드론 ‘스위치블레이드 600’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무기 전시회에 등장했다. 이 드론보다 더 진화된 완전 자율 드론 등 ‘살인 로봇’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무인 공격 무기인 드론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완전히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드론 등 ‘살인 로봇’까지 실전에 투입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다. 살인 로봇은 사람보다 훨씬 냉혹하게 작동해 인권 운동가들은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3일(현지시각) 많은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완전 자율 무기가 투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무기 혁신 전문가 재커리 캘렌번은 “많은 나라들이 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 기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통신은 사람의 공격 명령 없이 스스로 공격 대상을 탐지·선택·공격하는 무기가 실전에 배치되면, 전쟁의 양상은 기관총이 처음 전투에 등장했을 때에 못지 않은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이미 관련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하는 반자율 공격용 드론과 이런 드론에 대응하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인공지능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전쟁이 소모적인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두 나라가 완전 자율 무기들을 실전에 투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통신은 지적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디지털전환부 장관은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살인 드론은 무기 개발 단계에서 논리적이자 불가피한 다음 단계”라고 인정하고 “앞으로 6개월 동안 이 무기의 잠재력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로봇 무기 등을 연구하는 우크라이나 비정부 조직 ‘아에로로즈비드카’의 공동 설립자인 야로슬라우 혼차르 중령은 우크라이나군 지도자들이 현재는 완전 자율 살상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런 방침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도 인공지능 무기 개발에 적극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인공지능 기술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 지배자로 군림할 것이라며 러시아 군수업계가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러시아 당국자들도 자국산 ‘잘라 란세트’ 드론이 완전 자율 모드로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9년 6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 드론은 최대 비행 거리가 40㎞에 이르고 최대 탑재 중량은 12㎏이다.
아직까지 살인 로봇을 전투에 투입했다고 인정한 나라는 없지만, 유엔은 2020년 리비아 내전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유엔 전문가들은 2021년 3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리비아 정부군이 터키산 카라구-2 드론을 완전 자율 모드로 작동시켜 반군들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분명한 결론을 맺지는 않았다.
인권 단체들은 완전 자율 드론 등 살인 로봇의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있고, 지난 2021년 열린 ‘특정 재래식 무기 사용에 관한 유엔 협정’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하지만, 미국·영국·러시아 등의 반대로 살인 로봇 금지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한편, 보스턴 다이내믹스, 애니보틱스, 유니트리 등 미국·스위스·중국·캐나다의 6개 유력 로봇 기업들은 지난해 10월5일 공동 성명을 내어 자신들의 첨단 로봇을 무기화하기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로봇에 무기를 추가하면 그동안에는 접근하지 못하던 삶터와 일터 곳곳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새로운 위협을 제기하고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낳는다”며 업계의 무기화 반대 동참을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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