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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러시아가 우리 모든 것 빼앗았지만 고향 꼭 돌아가 재건에 힘 보탤래요”

등록 2022-12-31 07:00수정 2022-12-31 17:09

[한겨레S] 스페셜스토리
르포 | 해 넘기는 우크라 전쟁 피란 현장

“대피소로 이동하라” 우크라 서쪽 끝 르비우에도 가득한 전쟁의 기운
피란민 25만명, 치솟은 집값에 이동식 주택 등에서 생활하며 ‘제2의 삶’
새 직업 찾고 저녁 지어 먹는 일상 이어지지만 “하루빨리 고향 가고파”
하르키우에서 르비우로 피난 온 마리나 파식니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전방 근무 중인 남편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피난 오기 전 가족 삶을 지탱해준 작은 가게뿐 아니라 가족 일부를 잃었고, 남편과 남동생 등은 육군에 입대해 지금도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하르키우에서 르비우로 피난 온 마리나 파식니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전방 근무 중인 남편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피난 오기 전 가족 삶을 지탱해준 작은 가게뿐 아니라 가족 일부를 잃었고, 남편과 남동생 등은 육군에 입대해 지금도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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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각) 저녁 7시,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도시 르비우에 어김없이 어둠이 찾아왔다. 깜깜해진 도시에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부앙~’ 하고 크게 울려 퍼졌다. 다행히 이날 기온은 섭씨 2도로 매섭지 않았다. 거리는 삼삼오오 몰려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크고 작게 떠들었지만 곳곳에서 돌아가는 발전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조차 많지 않은 거리 한쪽 나무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친구는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속삭였다.

<한겨레> 취재진은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직후인 3월, 2주에 걸쳐 우크라이나 서부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에 머물며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여러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이어 6월엔 수도 키이우와 러시아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벌어졌던 부차 등 주변 도시를 둘러보며, 전쟁의 참상을 보도했다. 이후 6개월이 흐르는 동안 서구와 러시아의 대립은 더 치열해졌고, 서로를 향한 증오가 증폭되며 전쟁은 좀처럼 수습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해를 넘기게 된 끔찍한 전쟁을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서부 국경도시 르비우를 거쳐 키이우를 향해 ‘세번째 여정’에 나서는 마음은 예전보다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29일(현지시각) 오후 르비우에 갑자기 전기가 끊기면서 시민들이 발전기를 켜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29일(현지시각) 오후 르비우에 갑자기 전기가 끊기면서 시민들이 발전기를 켜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전쟁 때문에 전부를 잃었어요”

이날 밤 도착한 르비우는 키이우에 비해 작고 오밀조밀한 예쁜 도시였다. 6월에 방문한 키이우보다 한때 한 나라였던 폴란드의 동부 도시들과 더 닮은 느낌이었다. 전쟁 탓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크게 두가지다. 아예 국경을 벗어나거나, 국경 안에서 조금 더 안전한 곳을 찾아가거나. 르비우엔 후자의 선택을 한 이들이 들끓고 있었다.

29일 만난 마리나 파식니크(37)는 북동부 격전지인 하르키우주 살티우카에서 왔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난 2월24일,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놀라 발코니로 뛰어갔다.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전쟁이 났구나.’ 그길로 짐을 챙겨 엄마 나탈랴(59), 고양이 ‘베티’와 함께 하르키우주 내의 더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폭격을 피할 순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6주 정도 후인 4월8일 르비우로 피난 왔다. 애초 여기로 올 생각은 아니었다. 슬로바키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서부 도시 우즈호로드로 가는 기차를 탔지만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경로가 바뀌면서 르비우라는 낯선 도시에 떨어지게 됐다.

마리나는 남편 올렉산드르(39)와 함께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었다. 부부의 삶을 지탱해준 가게는 러시아군 미사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다. 고향에 남아 있던 시아버지 바실리(60)는 지난 9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숨을 거뒀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점령 아래 있던 하르키우를 탈환하기 불과 2주 전이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시아버지의 주검을 찾았지만 아직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태다. 올렉산드르는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원입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편, 남동생, 사촌 등 일가 남성 5명이 우크라이나 육군에 입대해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전쟁 때문에 많은 것을, 아니 전부를 잃었어요.” 마리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폴란드 국경에서 차로 1시간 거리(폴란드 동부 프셰미실과의 직선거리는 91㎞)에 있는 르비우에 등록된 마리나와 같은 ‘국경 내 피란민’(IDP, Internally Displaced Person)은 25만여명(지난 9월 기준)에 이른다. 집을 떠나온 난민들은 집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 일반 가정집에 머물거나, 정부나 국내외 자선단체들이 마련한 이동식 주택(모듈러 하우스) 등 쉼터로 간다. 일부는 자비로 집을 구하기도 하지만, 난민이 몰리면서 집세가 너무 올랐다. 르비우에 있는 국경 내 피란민 지원 센터에서 일하는 미콜라 크루페이(39)는 “2월 말 전쟁이 난 직후 몇주 만에 피란민 약 30만명이 몰리면서 집값이 최소 2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마리나 역시 르비우에 도착한 직후인 4월에 집을 구하려 했다. 방이 하나 딸린 작은 집이었지만, 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경 내 피란민 센터의 도움을 받아 르비우 62번 학교에 마련된 쉼터와 이동식 주택 등에서 7개월을 살았다.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에 살고 있는 난민 어린이들이 우크라이나 지도 위에 자신의 얼굴 그림을 붙여 각자 고향을 표시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남부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대체로 많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에 살고 있는 난민 어린이들이 우크라이나 지도 위에 자신의 얼굴 그림을 붙여 각자 고향을 표시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남부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대체로 많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대규모 공습으로 컴컴해진 르비우

르비우는 우크라이나 서쪽에 위치한 ‘후방’ 도시지만 전쟁의 참화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이곳에 도착한 둘째 날인 29일 오전 8시 요란스레 ‘공습경보’가 울렸다. 머물던 호텔에선 곧 러시아의 미사일이 날아온다며 “지하 대피소로 이동하라”고 안내했다. 취재진이 머물던 르비우시 중심부인 오페라 하우스 근처엔 직접 피해가 없었다. 아마도 시 외곽에 있는 발전·송전 시설 등을 타격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됐다.

놀란 마음을 누르며 오전 10시께 밖으로 나와보니 전 시내에 전력 공급이 중단돼 있었다. 정전이 되자 각 건물과 상점이 자가발전기를 가동하면서, 시내는 ‘부앙~’ 하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발전기가 쏟아내는 매연으로 도시 전체에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유심칩을 구입하기 위해 들른 인근 상점 역시 정전이 돼 어두컴컴했다. 전기가 없다 보니 모든 결제는 현금으로 이뤄졌다. 시청 민원실 앞에는 사람들이 긴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취재를 도와주는 현지인이 “관공서는 공습경보가 울리면 운영이 중단된다”고 알려줬다.

이날 이뤄진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 분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격렬한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평소처럼 짙은 황토색 옷을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날 밤 3분35초 분량의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 공군이 오늘 러시아의 또다른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의 제96, 오데사의 제160, 헤르손의 제208 방공여단을 직접 언급하면서 이들이 “러시아의 54개 미사일과 11개 공격형 드론을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가 쏜 미사일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오늘 밤 현시점에서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쏘아대는 미사일과 함께 스스로를 좀 더 깊숙이 죽음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미사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러리스트는 오랫동안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미사일들에 대해선 나중에 재판소에서 결론을 내게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언론 <인테르팍스 우크라이나>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가 가한 대규모 미사일 공습으로 3명이 숨지고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이 부상을 입었다.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동부 도네츠크주의 격전지 바흐무트와 솔레다르의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국제이주기구(IOM)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일 현재 국경 내 피란민은 590만명이다. 10월26일엔 654만명에 달했지만 두달 새 무려 62만명가량 줄었다. 우크라이나군이 9월 동북부의 주요 거점인 하르키우주, 11월 중순 남부의 요충 도시 헤르손시 등 일부 지역을 탈환하자, 이 지역 출신 난민들이 고된 외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하르키우 대부분 지역이 수복됐지만 마리나는 여전히 르비우에 머무르고 있다. 피란민들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국에서 운영 중인 국경 내 피란민 센터에서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센터에선 피란민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고 지낼 곳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자기 집을 무료로 나누겠다는 시민에게는 정부가 매달 주거 보조금을 일부 지급한다. 센터는 각종 법률 상담과 구직 활동에도 도움을 준다. “저도 난민 출신이라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 마음을 잘 알겠더라고요. 서로 마음이 통해요.”

르비우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뒤 지난달에는 월세방도 구했다. 나름 일상을 되찾았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형제들, 그리고 부모님이 고향에 남아 있으니까요.” 함께 르비우로 피란을 왔던 부모님은 하르키우가 수복된 뒤인 9월 발라클리야로 돌아갔다. “러시아군 미사일을 맞아 부서진 지붕을 고치러 가셨어요.” 노인들은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리나 역시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계획이다. “도시를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고향 떠난 난민들이 생활하는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 안 개인 공간.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고향 떠난 난민들이 생활하는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 안 개인 공간.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고향 떠난 난민들이 생활하는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 안 개인 공간. 방주인과 함께 피란을 온 고양이가 보인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고향 떠난 난민들이 생활하는 르비우 모듈러 하우스(이동식 주택) 안 개인 공간. 방주인과 함께 피란을 온 고양이가 보인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르비우 스트리스키 공원에 마련된 난민들을 위한 이동식 주택 단지의 공용 주방에서 볼로디미르 라우렌티예우(63)가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르비우 스트리스키 공원에 마련된 난민들을 위한 이동식 주택 단지의 공용 주방에서 볼로디미르 라우렌티예우(63)가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르비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우린 견딜 겁니다, 분명합니다”

이날 오후 5시께 르비우 스트리스키 공원에 마련된 난민들을 위한 이동식 주택에서 만난 볼로디미르 라우렌티예우(63)는 저녁 지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볼로디미르가 이곳에 입주한 것은 지난 6월이었다. 은퇴 뒤 도네츠크주 슬로우얀스크 23번 학교에서 8년 동안 시설관리인으로 일했다. 그가 일했던 학교는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였다. 전쟁이 시작된 뒤 다른 교사들과 함께 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탈출’시키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어떤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 시작된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내전 때부터 겪어온 일이었다. 기숙학교인 탓에 부모가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의 경우 볼로디미르 등 교직원들이 책임지고 도시 밖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학생들 100여명은 자가용·기차·버스 등으로 모두 무사히 도시를 벗어났다. 그는 4월8일 아들·딸과 학생 2명을 데리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당시 아들은 이동식 주택에서 함께 지내며 대학을 다니고, 딸은 얼마 전 대학 입학 시험을 통과했다. 볼로디미르의 아들과 딸은 아마도 르비우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볼로디미르는 조만간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할 일이 있어요. 전쟁 전부터 하고 있었던 학교 공사를 마쳐야 합니다.”

이날 밤 공개된 젤렌스키 대통령의 분노에 가득 찬 연설 역시 항전에 대한 당부로 끝이 났다. “올해도 이제 이틀이 남았습니다. 아마도 적들은 우리가 어둠 속에서 새해를 축하하도록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압제자들은 우리 도시들을 향한 다음 공격으로 우릴 고통스럽게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단 하나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견딜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르비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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