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그리스는 이미 비용 치러”
WSJ “그리스에 굴복하면 더 큰 대가”
WSJ “그리스에 굴복하면 더 큰 대가”
그리스가 5일(현지시각)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연장 조건인 ‘긴축 강화’ 요구를 6:4라는 예상 밖의 큰 표차로 거부했다. 그리스의 앞길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전혀 다른 근거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독려하는 목소리들도 터져나왔다.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두 시선을 보여준다.
노벨경제학상(2008년)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6일치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곧 그리스가 나쁜 유럽국가라는 걸 뜻하진 않는다”며 그렉시트를 촉구했다. 그리스의 부채 위기는 채무 뿐 아니라 대출의 무책임성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스는 그렉시트의 비용과 이전 정부들의 죄값을 (극심한 금융위기와 고통스런 긴축으로) 이미 치렀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채권단이 그리스의 집권 좌파(시리자) 정부를 축출하려 그리스 국민들을 괴롭히고 겁준 것은 민주주의 원칙의 가치를 신뢰해왔다는 유럽에서 수치스러운 순간이었으며, 만일 채권단의 캠페인이 성공했다면 끔찍한 전례를 남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유럽의 ‘자칭 전문관료들’은 사혈 요법을 고집했던 중세의 의사들 같다”며 긴축정책 신봉자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보수적 시장중심주의를 대변하는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도 6일치 사설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반개혁의 정치가 (유럽에) 전염되는 위험보다는 차라리 (그리스의) 유로 탈퇴가 낫다”는 것이었다. 신문은 “그리스에게 2개의 나쁜 선택이 주어진 건 맞지만 그리스는 최악을 선택했다”며 “따라서 그리스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대해 독일을 비난할 수도 없다”고 못박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아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장관들은 그리스가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는 지위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 들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동료들이 치프라스에게 굴복한다면 더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 타임스>가 크루그먼의 블로그 글을 보완해 지면에까지 실음으로써 채권단의 정책을 비판하고 그리스의 운명에 관심을 보인 반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신문이 공식 입장인 사설을 통해 그리스의 선택을 비판하고 유로존의 안정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 셈이다.
그러나 세계적 권위의 경제학자와 경제전문지 모두 그리스 및 유로존 위기의 해법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내놓진 않았다. 크루그먼은 다만 “어떤 경우라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나쁜 선택지들 중 그나마 최선”이라는 주장으로 글을 맺었다. 반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에게 더 좋은 선택은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를 선택한다면 그 낙진을 가능한 최소화하면서 내보내는 것”이라며 “이런 경험은 고통스러울 것이나 장기적으로 유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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