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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경제

‘단일 통화’의 저주?…휘청이는 유로존

등록 2015-07-05 19:58수정 2015-07-06 15:56

그리스 정부가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하루 전인 4일 포르트갈 스더 리스본에서 시민들이 “그리스와의 연대”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그리스 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리스본/AP 연합뉴스
그리스 정부가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하루 전인 4일 포르트갈 스더 리스본에서 시민들이 “그리스와의 연대”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그리스 정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리스본/AP 연합뉴스
경제 약소국 독자 통화정책 못써
무역적자 등 대응 힘든 자체 모순
‘EU 이탈’ 앞으로도 얼마든 가능
경제규모 큰 스페인 등서도 반발
5일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는 지난 60년 동안 유럽의 완전한 통합을 추구해온 유럽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기는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까지 가게 된 밑바탕에는 유로존(유로를 쓰는 유럽 19개국)의 자체 모순이 깔려 있는 탓이다. 국민투표까지 이르게 된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의 결속을 뒤흔들 수 있는 일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유로존의 근본적 모순은 세계적 수출 경쟁력을 갖춘 독일 같은 나라와 지중해의 비교적 작은 섬 나라인 키프로스 같은 나라가 단일 통화인 유로로 묶여서 공동의 통화정책 아래 놓여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처음엔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은 경제력이 강한 나라들의 덕을 보는 듯도 했다. 유로존 전체의 조달 금리가 낮아져, 그리스와 아일랜드, 스페인 같은 나라들은 이전보다 싼 값으로 외부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대출 붐을 불렀고 주택가격 거품을 일으켰다. 자산 가격 거품은 이들 나라에서 임금 상승을 가져왔으며 산업 경쟁력도 약화시켰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의 무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독일의 무역 흑자는 그에 비례해 늘었다. 같은 유로존이라도 북유럽 국가와 남유럽 국가 사이 경제 불균형은 2010년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을 시작으로 한 유럽 부채 위기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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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문제가 심각했던 남유럽 국가한테는 한때 ‘돼지들’(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라는 모욕적인 말이 붙어다녔다. 유럽 부채 위기는 현재 어느 정도 누그러졌지만 북유럽 국가와 남유럽 국가 사이 경제 불균형 문제는 여전하다. 유럽연합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키프로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가 8.82%이며 스페인도 5.8%에 이르렀다. 유로존 재정적자 목표치는 3%이지만 프랑스마저도 이를 지키지 못한 3.96%에 머물렀다.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은 0.67%의 재정흑자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올해 3월 기준으로 그리스가 25.6%, 스페인 22.9%이지만, 독일은 4.8%에 불과하다. 청년실업률은 더욱 심각해서 올해 3월 기준 그리스의 25살 이하 실업률은 49.7%이고 스페인은 49.9%였다. 반면, 독일은 7.2%에 불과했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로존의 모순은 다시한번 드러난다. 독자적인 통화를 쓰는 나라는 경제 위기가 닥치면 금리를 낮추고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며 경기부양책을 사용해 위기를 탈출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이런 방법을 쓸 수 없다. 독자 통화가 없으니 통화가치 평가 절하는 불가능하고, 금리 조절은 유럽중앙은행의 몫이다. 남은 방법은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으로 이뤄진 ‘트로이카’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에 요구했던 긴축정책 정도에 불과하다.

5일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국제채권단의 협상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가 유럽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듯 뒤에는 유럽 지도가 걸려 있다. 테살로니키/AFP 연합뉴스
5일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국제채권단의 협상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가 유럽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듯 뒤에는 유럽 지도가 걸려 있다. 테살로니키/AFP 연합뉴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유럽 국가들과 남유럽 국가들 사이 산업 경쟁력 격차가 해소되던지, 아니면 미국의 주들처럼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적 통합까지 이루는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해법들이다.

그리스는 유로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정도이고, 경제 규모가 2000억달러 수준으로 미국 앨라배마 주보다 약간 큰 수준에 불과하다고 <시엔엔 머니>는 전했다. 경제 규모만 놓고 따지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빠지는 ‘그렉시트’가 발생해도 당장 유로존이 거대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가 국제채권단과의 협상이 결렬된 뒤 국민투표까지 실시한 것 자체가 이미 유로존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또 구제금융 조건으로 긴축을 요구해온 독일과 국제통화기금 등 채권단 정책의 정당성도 흔들리게 됐다. 긴축 반대를 외치며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지난 1월 집권한 뒤 스페인에서는 포데모스와 같은 긴축 반대 정당들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는 등 정치적 세력을 키우고 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경제 규모가 큰 남유럽 국가들에서도 그리스에서처럼 유로존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상황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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