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디폴트 위기에 몰린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문을 닫은 은행 앞에 연금 수령자인 노인들이 몰려들어 서 있다. 그리스에서 보통 연금은 월 말에 수령하는데, 이날 그리스 정부는 다음달 6일까지 은행 영업을 중단시켰다. 현금입출금기(ATM)에서는 돈을 인출할 수 있지만 한도는 하루 1계좌당 60유로까지다. 아테네/AP 연합뉴스
30일 만기 16억유로 상환능력 없어
총리, 유로존 정상에 지원요청 편지
미 “디폴트 처리말라” 유럽 압박
채권단, ‘체불’로 처리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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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디폴트 처리말라” 유럽 압박
채권단, ‘체불’로 처리할 수도
자본 통제까지 나선 그리스는 이제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라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일까? 그리스 정부가 이런 파국을 원한다고 해도 뜻대로 할 수조차 없다는 데 현재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스의 집권 시리자 정부는 국제 채권단의 양보가 없다면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국내 여론은 유로존 잔류가 우세하다. 국제사회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만은 막으려 한다. 이를 위해 시리자 정부의 실각도 염두에 두고 있다.
■ 30일 그리스는 디폴트 되나?
30일은 그리스에 대한 기존 구제금융이 종료되는 한편,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16억유로를 갚아야 하는 만기일이다. 현재로서는 그리스가 이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 유럽중앙은행(ECB) 등도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태도다. 그리스가 이 돈을 못 갚으면 사실상 디폴트 된다. 하지만 민간 채권자가 아닌 국제통화기금의 채무를 못 갚는다는 것은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아니라 ‘체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이런 입장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를 일단 기술적으로 피할 수 있는 여지는 있는 셈이다.
채권단 쪽도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유럽연합 관리들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입장을 완화한다면 구제금융이 종료되는 30일 자정 전에 유로존 회원국 회의를 열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채권단 안에서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은 온건,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은 강경으로 이견을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28일 성명을 내 그리스를 옹호했다. 그는 유럽연합 쪽의 최근 조처에 실망했다며 “그리스 당국과 계속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우리의 입장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전화통화를 했다며 “두 지도자는 그리스가 유로존 내에서 개혁과 성장을 재개할 수 있는 길로 돌아가도록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국제통화기금 총재 및 독일·프랑스 정부에 그리스와 협상을 계속하도록 촉구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루 장관은 또 치프라스 총리에게 전화해 유로존 잔류를 촉구했으며, 미 관리들은 그리스에 은행 휴무와 자본 통제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고 미 재무부가 밝혔다.
미국으로서는 그리스의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가 회복중인 자국 및 세계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고, 독일 등 유럽 쪽에 강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30일에 기존 구제금융이 종료되고 그리스가 채무를 못 갚아도, 국제사회는 그리스를 디폴트로 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7월5일 국민투표 이후는?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 연장안을 그리스인들이 투표에서 받아들여도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다.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이미 30일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다만 국제 채권단은 자신들의 제안을 그리스 국민들이 수용했다는 데 정치적 의미를 두고, 새로운 협상을 유리하게 시작할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리스 쪽의 협상 주체다. 유럽 언론들은 국민투표가 가결되면 시리자 정부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 채권단 쪽도 내심 새 정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시리자 정부가 붕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혼란과 비용을 그리스와 국제사회가 감당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채권단에 유리한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보장도 없다.
국민투표가 부결되면 시리자 정부의 입지는 강화된다. 그렇지만 국제 채권단과의 협상에 돌파구가 열린다는 보장도 없으며, 시리자 정부가 막바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 탈퇴로 달려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잔류를 원하는 국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유럽중앙은행으로 대표되는 채권단은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의 고삐를 쥐고 그리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유럽중앙은행은 28일 그리스의 국민투표 시행 발표 뒤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이 일어나자, 긴급유동성지원 확대를 거절했다. 애초 이마저도 중단하려 했으나 프랑스와 국제통화기금 등의 요청으로 기존 수준을 유지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새로운 자국 통화를 도입하지 않는 한 기댈 곳이라고는 유럽중앙은행의 긴급유동성지원밖에 없는 상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8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유로존 회원국 정상들에게 ‘구제금융 연장안 거부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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