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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가족·친구·직장 동료끼리도 반목…‘극단의 분열’ 장기화 우려

등록 2015-07-05 19:54수정 2015-07-06 15:57

[그리스 국민투표] 혼돈의 그리스 어디로…
찬반 집회 대치
“유럽 벗어나면 더 심각한 위기뿐”
“나치 용서했는데 저들은 협박만”
찬·반 박빙에 비난전 목소리 높여

세 가지 시나리오?
1 치프라스 사임-구제금융 재협상
2 ‘찬성’ 승리에도 치프라스 유임
3 ‘반대’ 승리땐 그렉시트 현실화

3일 저녁(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중심 신타그마 광장에서 집권당인 시리자 주최로 열린 국제채권단 협상안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승리의 브이(V) 자를 그리며 행진하고 있다.
아테네/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3일 저녁(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중심 신타그마 광장에서 집권당인 시리자 주최로 열린 국제채권단 협상안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승리의 브이(V) 자를 그리며 행진하고 있다. 아테네/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11년 전인 2004년 7월5일, 그리스 국민은 온통 기쁨과 흥분으로 한마음이었다. 전날 밤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개최국 포르투갈을 꺾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은 그리스인들은 거리에서 환호하고 카페에서 낮선 이들과도 축하 인사를 나눴다.

2015년 7월5일, 그리스 국민은 자신과 나라의 앞날을 놓고 극단적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조건인 추가긴축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고, 국민은 ‘정답 없는 선택’ 앞에서 절망했다. 5일(현지시각) 국민투표는 국제채권단과 치프라스 정부 사이뿐 아니라 그리스 안에서도 부부, 형제자매, 친구와 이웃, 일터의 동료들 간에 깊은 골을 남겼다. <뉴욕 타임스>는 4일 “이런 분열은 투표가 끝난 뒤에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스와 유럽의 미래를 건 이번 투표를 앞둔 3일 밤 아테네 시내에선 채권단 요구안에 대한 반대(OXI·오히) 집회와 찬성(NAI·네) 집회가 팽팽히 맞서며, 그리스의 고민과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2만5000여명의 ‘반대’ 시위자들 앞에서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에서 품격 있게 살아가자”고 호소했다. 이 집회에서 만난 카테리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째 취직을 할 수가 없다”며 “그리스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 팔렸고, 젊은이들한테 앞날에 대한 보장은 없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더라도 상관없다. 왜냐면 지금보다 더 나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역업 종사자인 타나시스(45)는 “채권단의 강요에 따라 계속된 긴축정책으로 회사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렵다”며 “유럽연합은 지금 돈만 아는 은행 시스템처럼 변해버렸다. 사람이 중심이 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생활자인 미할리스(63)도 “독일이 유럽 내에서 강경 정책으로 밥그릇을 키워가고 있다. 우리는 독일에 절대 휘둘리지 않을 거다”라고 국제채권단을 대표하는 독일을 강하게 비난했다. “우리는 나치가 우리에게 저지른 일을 이미 용서했는데, 지금 그들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을 봐라. 투표에서 반대로 결정나더라도 그리스가 유럽연합에서 퇴출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그건 저들의 협박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시각, 인근에 위치한 올림픽경기장 앞에서는 ‘찬성’을 주장하는 시민 1만7000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공동 국가인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틀고, 유럽연합 깃발을 흔들어댔다. 이 집회에 참석한 아킬라스(52)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곳도 없다”며 “투표 결과 반대 의견이 많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가게 되면 그리스는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엔지니어 마리우스는 “반대가 승리하면 그리스는 유럽연합에서 나가야 하고 우리는 북한처럼 고립될 것”이라며 “그리스와 유럽연합 사이 신뢰가 무너진 상태인데 새로운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파탄은 유럽연합의 통합에 암운을 드리웠지만, 가장 큰 타격은 그리스 국민과 집권 급진좌파(시리자) 정부에 돌아간다.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올 경우 사퇴할 뜻까지 밝혔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투표 이후에 대한 세가지 시나리오를 전망했다.

첫째,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고 시리자 안의 온건파가 중도 성향의 야당들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야니스 드라가사키스 부총리(시리자)가 유력한 총리 후보다. 이는 그리스가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의 채무 35억유로 상환 시한 이전에 새로운 구제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긴 한다. 지난달 30일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불이행에 이어 유럽중앙은행 채무까지 갚지 못할 경우 그리스는 진짜 ‘디폴트’ 상황에 몰린다.

둘째,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와도 온건파들이 연정 구성에 실패해 치프라스가 유임하는 경우다. 치프라스는 “국민들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유로존 채권국들은 이미 치프라스 총리와는 더이상의 협상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셋째,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나올 경우, 유럽 채권단은 긴축 완화와 부채 경감, 그리스는 노동시장 개혁 등 서로 조금씩의 양보책을 내놓고 협상을 지속할 수 있다. 또는 정반대로 채권단과 치프라스의 정면충돌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유로존은 이미 그리스 국민투표가 ‘반대’로 나올 경우 그렉시트로 치닫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아테네/김보협 기자, 조일준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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