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노바 카호우카댐이 붕괴되면서 홍수가 발생한 헤르손에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6일(현지시각) 새벽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주도 헤르손시에 사는 옥사나 알피오로바(57)는 평소와 다름없이 러시아군이 또 공격을 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아침 상황은 어딘가 달랐다. “이웃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5일 밤 우크라이나 남부 노바 카호우카댐이 붕괴되며 거대한 물이 도시를 덮친 것이다. 알피오로아는 아홉달 동안 계속된 러시아군 점령 때도 그리고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군 헤르손시 수복 뒤에도 계속된 러시아군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이 집을 지켜왔다. 하지만 댐이 무너지며 거리는 물에 잠겼고, 그가 사는 동네는 지대가 낮아 침수가 더 빨랐다.
그는 “사람들이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수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기, 가스, 수도 공급도 모두 끊겼다. 지난 1년 반 남짓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온 집이지만, 떠나야 했다. 헤르손에서 약 60㎞ 떨어진 미콜라이우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6일 노바 카호우카댐 붕괴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새로운 공포”를 마주하게 됐다고 전했다. 헤르손 현지에서 경찰은 확성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대피하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도시에 남기로 한 주민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주민들은 좀 더 높은 지대로 이동하거나 아파트 위층으로 몸을 피하는 중이다.
신문은 미콜라이우에 도착한 열차 칸이 대부분 비었고 어린이를 포함한 승객 43명만 타고 있었다고 전했다. 피란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피란을 떠난 지 오래이기 때문에, 헤르손시에 남은 이들 상당수는 노인들이다.
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노바 카호우카댐이 붕괴되면서 홍수가 발생한 헤르손에서 구조대원들이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헤르손시에서 약 60㎞ 거리에 있는 안토니우카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도시는 사방에서 들어온 물 때문에 섬이 돼 버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노바 카호우카댐 파괴가 서로 상대방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헤르손 현지에서 상황을 지켜본 수문학자인 라리사 무지안은 영국 <가디언>에 강물 수위가 “30분마다 6∼8㎝씩 오르고 있고 댐이 터지기 전보다 3m 이상 높아졌다”고 했다. <가디언>은 러시아군은 헤르손시에서 철수했지만 불과 2.5㎞ 거리에서 거세게 포격을 계속하고 있어, 도시 저지대는 홍수 전에도 이미 황폐해진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댐 붕괴로 이제 도시는 냄새나고 더러운 기름으로 뒤덮인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어른들은 멍하니 초토화된 도시를 바라보고, 아이들은 물장난하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댐 파괴로 드니프로 강 양쪽에서 4만2천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위험에 처했으며 홍수는 7일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위성업체인 막사 테크놀로지가 6일 오후 노바 카호우카댐이 있는 노바 카호우카와 헤르손시 남서쪽에 있는 드니프로우스카만 사이 2500㎢에 달하는 지역 상황을 촬영한 위성 사진을 보면, 수많은 마을이 침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약 80곳에 달하는 마을이 침수 위기에 처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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