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즈리과기대학 장훙웬 교수(국제무역과)가 지난달 28일 학교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최현준 특파원
“2021년부터 티에스엠시(TSMC)는 ‘집중’에서 ‘분산’으로 전략을 바꿨다. 삼성전자는 20년 동안 한국에 300조원을 투자한다고 하는데 이는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삼성이 외국에 시스템 반도체를 팔려고 하면 티에스엠시가 이미 그 나라에 세운 공장을 볼 것이다.”
장훙웬(張弘遠) 대만 타이베이 즈리(致理)과기대학 교수(국제무역과)의 연구 분야는 대만의 ‘경제 안보’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세계 최고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티에스엠시와 그 경쟁사인 삼성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장 교수를 타이베이에서 만나 티에스엠시의 성공 비결과 향후 전략에 대해 물었다.
-티에스엠시가 세계 최고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로 성장한 비결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999년 9월 발생한 ‘9·21 지진’이 그중 하나라 본다.(대만 중부에서 발생한 규모 7.7 지진으로 2400여명이 사망했다) 대만은 삼성을 가장 중요한 경쟁자로 생각했고, 2000년 이전까진 이기기 힘들다고 봤다. 그러나 9·21 지진 이후 티에스엠시는 생산 능력을 빨리 회복하기 위해 ‘기술가속’이라고 부르는 연구·개발과 작업 방식을 만들었다. 2000년부터 티에스엠시의 연구·개발 기술자들이 3교대 근무에 들어갔다. 단기간에 많은 엔지니어를 투입하는 방법으로 생산 활동과 설계 활동이 빠르게 회복했다. 티에스엠시는 이를 발전시켜 연구·개발 인력의 투자를 가속하고 핵심 프로젝트를 개선하는 데 활용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티에스엠시의 경쟁력은 끊임없는 공정 조정에서 비롯된다. 계속 세부 사항을 파고드는 것이다. 지금 반도체는 2나노(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런 세밀함을 갖추는 데 큰 비결이 있는 게 아니다. 한 사례로, 티에스엠시 공장의 환풍기 날개에서 미세한 쇳가루가 발생했다. 바람을 타고 선반에 날아와 선반 전체를 오염시켰다. 직원들은 이틀에 걸쳐 쇳가루가 어디서 왔는지 연구했고, 결국 찾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티에스엠시만의 반도체 선진 공정이 만들어졌다.”
지난달 30일 대만 신주의 신주과학기술단지 안에 반도체 회사 티에스엠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신주/최현준 특파원
-티에스엠시의 성장이 대만 산업에는 어떤 효과가 있나.
“과거 대만 제조업체가 주문을 받을 때 듣는 첫 질문은 원가였다. 하지만, 지금 반도체를 주문할 때 원가보다 ‘수율’(불량률의 반대 뜻으로, 정품이 나오는 비율)을 묻는다. 대만은 1950년부터 산업화를 시작했고, 50년 동안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위탁생산을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가격을 먼저 묻지 않는 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또 티에스엠시는 중국 본토에 진출하지 않은 대만의 많은 중소기업에게 기회를 줬다. 이들도 티에스엠시의 3교대 근무와 핵심 개념을 받아들였다. 과거 대만 기업은 대충 일하기도 했는데, 티에스엠시 요구로 정밀화하기 시작했다. 티에스엠시의 생산 방식이 대만 전체 산업에 전파된 것이다.”
-최근 2~3년 사이 티에스엠시가 영업이익 등에서 삼성전자를 앞섰다.
“솔직히 자기 반도체 브랜드가 있는 삼성이 왜 반도체 파운드리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이것이 티에스엠시가 삼성을 앞선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기 브랜드가 있는 삼성은 애플 등과 경쟁 관계여서 파운드리 주문을 받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 대만은 삼성처럼 큰 회사를 운영할 능력이 없어 불가피하게 위탁생산으로 갔다. 티에스엠시도, 폭스콘도 다 위탁생산이다. 파운드리로 성공하면 자기 브랜드를 만들려고 하지만, 대만의 전략은 그렇지 않다. 파운드리가 대만 산업의 의견일치가 됐다.”
-삼성을 오래 연구했는데, 최근에 주목한 게 있나?
“삼성은 훌륭한 회사이고, 지금도 대만은 삼성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삼성 공장에서 일어난 일은 대만 반도체 업계에 충격을 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윤석열 대통령과 삼성 반도체 공장을 견학했는데, 둘 다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공장에 들어갔다. 옆에 있는 삼성 사람들은 먼지 등을 막는 보호복을 입었다. 대만 엔지니어들은 이를 보고 ‘삼성이 망했다’고 했다. 만약 미국 대통령이 티에스엠시 공장에 가려면 반드시 방호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관리에 있어서 삼성과 티에스엠시 사이에 이런 미세한 차이가 생긴 것 같다.” (삼성 쪽은 지난해 5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공장에 양복을 입고 들어간 것은 “클린룸 마감 전, 즉 공장 완공 전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클린룸 마감 전이라도 양복을 입고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맨 왼쪽)과 윤석열 대통령(왼쪽 둘째)이 지난해 5월20일 오후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왼쪽 셋째)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티에스엠시는 2020년부터 미국과 일본, 독일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왜 해외로 나가나?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중국과 대만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공급망을 분산시키는 차원이다. 쉽게 말해 안전을 위해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티에스엠시가 왜 일본에 갔을까? 일본은 지금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않지만, 반도체 소재 분야는 매우 강하다.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때도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화학 원료를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사실 이 부분이 티에스엠시가 가장 약하다. 결국 일본에 투자하는 것은 대만과 일본이 기술을 교환하는 것이다. 대만은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 삼성이 세계를 독주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삼성은 경기 용인에 20년 동안 3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나는 이것이 삼성의 큰 실수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삼성은 앞으로 20년 동안 용인에 23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했다. 반대로 지난 2월 티에스엠시는 미국 공장에 추가로 3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미 미국에 40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더 늘린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반도체 생산 요구가 있다. 대만의 전략은 끊임없이 공급망과 시장을 결합하는 것이다. 일본은 대만과, 대만은 타이(태국)과 분업하려 하는데, 한국은 한 곳에 집중한다. 이렇게 집중하면 반도체 경쟁에서 자기 자본과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
-티에스엠시가 전략을 바꾼 것인가?
“2020년 미국 투자를 결정한 티에스엠시는 2021년 해외 분산으로 전략을 바꿨다. 앞으로 티에스엠시가 계속해서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전기차 공장 옆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삼성이 외국에 반도체를 팔려고 하면, 티에스엠시가 이미 그 안에 세운 공장을 볼 것이다. 삼성은 앞으로 20년 동안 투자한다고 했으니, (전략을 바꾸는) 탄력성이 있을 거라고 본다. 티에스엠시가 계속 독주하거나 압도적 우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자 컴퓨터 등이 등장하거나 반도체 소재가 바뀌어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다음에 티에스엠시는 어디로 갈까?
“싱가포르 얘기도 나오는데, 다음은 인도나 멕시코로 갈 것이다. 특히 인도와는 지금 투자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만과 미국의 노동 문화는 다르다. 티에스엠시가 미국에 세우는 공장이 성공할 수 있을까.
“티에스엠시의 기업문화는 상당히 엄격하다. 티에스엠시는 반도체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30분 안에 도착해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이런 환경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만 반도체 업계는 베트남과 타이, 인도, 말레이시아 등의 우수 대학생을 대만에 데려와 교육한 뒤 미국 등으로 보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 이런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약 60여명이 대상이라고 한다. 이는 티에스엠시 기업 문화가 글로벌화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티에스엠시 직원들은 대부분 영어를 한다. 창업자인 장충모(모리스 장) 회장 때부터 모든 보고서가 영어로 작성된다. 삼성도 많은 외국 고위 간부들이 있지만, 아직 한국어가 중심인 것으로 안다.”
-외국에 공장을 세우면 기술이 유출되고, 대만 반도체 산업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티에스엠시의 핵심은 제조 공정을 조정하는 능력이다. 이는 사실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과 유사하다. 한국 김치 제조법을 알게 됐다고, 그 맛을 그대로 낼 수 없다. 제조법 이외의 노하우가 있다. 또 티에스엠시는 기술 유출로 수 차례 피해를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법률 부서가 매우 강해서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국 보조금이 독소조항이라며 논란이 크다.
“대만에선 한국만큼 논란이 크지 않다. 한국·대만·일본 등 기업은 미국 반도체 보조금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티에스엠시가 민진당 정부로부터 미국 진출 요청을 받았을 때, 계산해서 결국 보조금을 받고 가기로 했다. 사실 거부하기 힘들었다. 애플·퀄컴·엔비디아 등 가장 큰 고객이 미국에 있고, 반도체 기술의 원천도 모두 미국에서 왔다. 티에스엠시의 공장과 미국의 시장·기술을 서로 교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티에스엠시가 외국에 진출해 탈대만화된다는 논란은 없나.
“한국에 북한이 있듯 대만에도 불안정한 이웃, 중국이 있다. 1950년대 포격전이 있었고, 이후에도 대만해협 위기가 반복됐다. 이는 자본·인구 유출을 불러왔고, 대만의 가장 우수한 인재·자본이 대만 바깥에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이게 또 다른 기회를 줬다. 해외의 최고 엘리트들과 대만이 사회적 연결 고리를 갖게 된 것이다. 티에스엠시 창업자 장충모가 대표 인물이다. 그는 엠아이티(MIT)에서 공부했고, 반도체 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50대까지 일했다. 대만은 최선보다 차선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대만은 앞으로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기 힘들다. 중국의 제조·생산 능력이 향후 10년 동안 아시아의 다른 제조업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은 선진 반도체 공정으로 인한 시장 이익을 누리고 있고, 아직 최선책이 없는 가운데 현상을 유지하는 차선책을 가져가고 있다. 그래서 대만의 일부 학자나 기업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제재와 봉쇄를 지지한다.”
-미·중 기술냉전이 심각하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갈까?
“나는 티에스엠시를 끝으로 사실상 고급기술 교류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이 중국을 주요 경쟁자로 삼으면서 협력 관계가 깨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은 물론 세계의 분열을 초래했다. 앞으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세계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방어적이거나 자주적, 혹은 독립적인 경제 모델이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 기술 동맹과 중국·러시아의 적색 기술 동맹이 충돌할 것이다.”
타이베이/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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