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암(Arm)이 13일 전략적 협업을 선언했다. 사진은 인텔 로고. EPA 연합뉴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뛰어든 인텔이 반도체 설계전문 회사 암(Arm)과 손을 잡으면서, 파운드리 2위 사업자인 삼성전자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공장 건설 등에 20년 동안 300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1위인 대만 기업 티에스엠시(TSMC)를 제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경쟁력이 강화된다면 삼성은 티에스엠시와 인텔 양쪽에 끼일 가능성도 있다.
인텔은 13일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와 암이 함께 인텔의 18옹스트롬(1.8나노미터 수준, 10억분의 1.8m) 공정을 활용해 모바일 기기용 반도체 시스템온칩(SoC)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두 기업은 우선 모바일 반도체 설계에 중점을 둔 뒤 향후 자동차·사물인터넷(IoT)·데이터센터·항공우주산업용 반도체까지 협력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암은 세계 최대 모바일 반도체 설계자산(IP)을 가진 기업으로 애플, 퀄컴 등과 협업해 왔지만, 그동안 독자 반도체 설계를 추구해온 인텔과는 거리가 있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협업으로 시장 기회를 확대하고 업계 최고 수준의 개방형 공정을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협업은 반도체 최강자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인텔의 승부수로 해석된다. 인텔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세계 최고의 역량을 자랑하던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이었지만, 지난 5년 동안 연구개발에 뒤처지면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인텔은 지난 2021년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정책에 힘입어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출범시키고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에이에스엠엘(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싹쓸이하면서 2024년 2나노, 2025년 1.8나노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애플과 퀄컴 등을 고객사로 둔 암을 끌여들여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복안을 낸 것이다. 르네 하스 암 최고경영자(CEO)도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우리 고객사의 핵심 파운드리 파트너사로 만들 수 있다”고 양사의 협업 의미를 내세웠다.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중 90%가 암의 설계도를 사용한다.
인텔과 암의 협업이 성공할 경우 향후 파운드리 시장은 티에스엠시가 독주하면서 삼성전자와 인텔 간 2위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인텔이 개발하고 있는 1.8나노 공정처럼 티에스엠시와 삼성전자도 2025년 양산을 목표로 2나노 공정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이 아웃소싱 칩 제조업체로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암과 협력하는 것”이라며 “인텔이 경쟁사에 공장을 개방해 제조역량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티에스엠시와 삼성전자에 빼앗긴 입지를 만회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텔과 암의 동맹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파급 효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나노 기술 제조 공정을 개발했다지만, 수율을 높여 실제 반도체 양산이 가능한 수준이 될지는 좀 지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인텔이 현재 1.8나노급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춘 건 아니다. 실물이 양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시장 지위가 공고한 티에스엠시나 삼성전자가 위협 받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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