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정부가 밀고 여야가 합의한 반도체 대기업의 세금 감면 확대 논의는 한국의 주요 정책이 얼마나 허술하게 결정되는지 그 실상을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사실관계는 뒷전이고 검증은 사라졌으며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여야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반도체 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정치권이 이미 합의한 만큼 이달 30일 국회 본회의 통과도 유력하다. 반도체 특별법은 법상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된 반도체·이차전지(배터리)·백신·디스플레이 분야 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대폭 높여주는 게 핵심이다. 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기존 8%에서 15%, 중소기업이 16%에서 25%로 각각 올라간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시설에 20조원을 투자할 경우 법인세에서 빼주는 공제액이 1조6천억원에서 3조원으로 1조4천억원 늘어난다.
애초 여야는 지난해 말 법 개정을 통해 반도체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6%에서 올해부터 8%로 높였다. 이 공제 제도는 2021년 하반기부터 처음 적용했는데, 제도 시행 1년여 만에 다시 공제율을 상향 조정한 것이다. 나아가 이번에 또 공제율을 높인 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3일 “기재부가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의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올해 한시적으로 직전 3년간 평균 시설 투자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10% 추가 세액공제를 해주는 내용도 담겼다.
문제는 속전속결로 이뤄진 의사 결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현재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8%는 현재도 미국(25%)을 빼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가 있는 대만은 5%에 불과하고, 유럽 국가들은 별도 세제 혜택이 없다. 미국의 경우엔 정부 지원 대가로 초과 이익 환수, 기업 기밀 공개,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 등 각종 규제가 뒤따라 기업들 사이에서 투자 회의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기재부도 지난해까지 이런 논리를 폈으나 윤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감세의 투자 확대 효과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반도체 대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 제도는 2021년 하반기부터 처음 적용했다. 그러나 공제 대상인 ‘시설’ 심사 절차가 늦어져 지금껏 공제 신고 건수가 단 1곳도 없다. 세금 감면을 받으려면 기술심의위원회가 해당 투자 시설이 공제 대상이라고 인정해야 하지만, 3월 법인세 신고 시점까지 위원회 심의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이 점을 지적하며 “설비 투자 세금 감면이 투자 유치와 고용 증대를 야기한다는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고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소수의 목소리는 묻혔다.
오히려 민주당은 세액공제 확대 대상인 국가전략기술에 반도체 등 외에 수소와 미래형 이동 수단을 추가했다. 이 ‘미래형 이동 수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조차 정하지 않았다. 세액공제 확대로 인한 향후 세수 감소 규모를 추산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회 기재위 소속인 한 야당 의원의 보좌진은 <한겨레>에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공장 후보지, 자율주행차 시험장 등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에게 기업 민원이 들어와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주먹구구로 밀어붙인 법 개정안은 앞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등 소수의 국가전략기술만 세금 공제율이 워낙 높아진 탓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기업들이 “우리도 공제를 확대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할 수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배터리 등 기존 국가전략기술 외에도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에 세액공제 대상을 추가로 지정할 수 있게 해 세금 감면 제도가 누더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앞서 지난 16일 여야가 반도체 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고광효 기재부 세제실장은 이 자리에서 “저희도 (앞으로 투자 세액공제 대상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며 “제도를 아주 보수적으로 운용하겠다”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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