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대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26일(현지시각) 흑인 여성이 ‘투표하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시엔엔> 방송은 이날 미 전역에서 흑인들의 투표율이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올리언스/AP 연합뉴스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데이브 리처즈(51)는 대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첫날인 지난 12일(현지시각) 동트기 전부터 애틀랜타 외곽 스머나의 투표소를 찾았다. 대기 시간을 고려해 접이식 의자와 커다란 물병도 챙겼다. 새벽 6시부터 3시간을 줄 서 기다린 뒤에야 자신의 한 표 권리를 행사했다.
리처즈에겐 이번 선거가 ‘인생 일대의 선거’다. 그는 26일(현지시각) 보도된 <시엔엔>(CNN)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은 버락 오바마가 출마했던 2008년 대선보다 더 중요하다. 2008년 대선이 변화와 역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 대선은 미국을 구하기 위한 선거”라고 말했다.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미 전역에서 흑인들의 투표 참여가 4년 전 대선 때보다 엄청난 기세로 증가하고 있다고 <시엔엔> 방송이 보도했다. 여론조사기관 ‘카탈리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조지아주에서만 대선을 2주 앞둔 지난 20일까지 60만1000명의 흑인들이 사전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같은 때(28만6240명)보다 2배 이상이 되는 수치다. 같은 기간, 메릴랜드주에선 19만2775명, 캘리포니아에선 30만3145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4년 전보다 각각 10배(2016년엔 1만8천명), 3배(10만6360명) 늘어난 것이다.
4년 전 대선 때보다 더 많은 흑인들을 투표소로 나오게 만든 건, ‘안전과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데 따른 것이라고 <시엔엔> 방송은 분석했다. 코로나19 확산 속 유색인종의 피해가 도드라진데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인종차별 및 경찰 폭력 문제 등이 크게 부각된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특히 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비난하길 주저한 트럼프 대통령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으며, 미 연방대법원이 ‘오바마 케어’를 기각할 경우 의료혜택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흑인들의 투표 참여 증가에 민주당은 고무된 분위기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던 2016년 대선 당시, 흑인들의 저조한 투표 참여가 트럼프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대선에선 20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투표율이 하락해 59.6%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당시 2만3천표 정도의 근소한 차로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경합주 위스콘신의 경우, 2012년 대선(74%) 때보다 흑인 투표율이 무려 19%포인트나 빠진 게 결정적인 패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에선,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를 유세 전면에 내세우는 등 올 한해 미국을 달궜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열기를 투표 참여로 연결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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