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폭력시위에 군대 동원 방침을 밝힌 뒤, 백악관 근처 세인트 존 교회를 걸어서 방문해 성경을 들어 보이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폭력시위에 군대를 포함해 연방·지방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의 분노를 달래고 인종갈등을 해소하는 메시지보다는 ‘법과 질서’를 앞세워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번 사태를 정면돌파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저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여러분의 법·질서 대통령이자 모든 평화시위자들의 편”이라며 “법을 지키는 미국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연방·지역 자산과 민간인,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 또는 주가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행동을 취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미국 군대를 배치해서 그들을 위해 문제를 빨리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군대 배치의 법적 근거를 대지는 않았으나, 미국 언론은 1807년 제정된 반란법(Insurrection Act)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이 법은 대통령이 폭동이나 반란 진압을 위해 주지사의 동의 없이도 군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가장 최근에 발동된 것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때였다. <시엔엔>(CNN)은 국방부 안에서는 “각 지역이 치안 유지를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트럼프의 군대 동원 발언에 회의론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미 연방의회 흑인의원모임인 블랙코커스의 회장 캐런 배스 하원의원(민주당)은 “군대를 부르겠다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위협과 협박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도 불러낸 것으로, 이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플로이드 사망 7일이 지나서야 연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초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은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 트럼프의 측근들은 시위가 약탈·방화 등을 수반하며 과격해진 지난 주말 사이 트럼프에게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더구나 트럼프가 백악관 앞 첫 시위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밤 지하벙커로 대피했었다는 보도가 나온 터라, ‘약해 보여선 안 된다’는 주문이 더 거셌을 것으로 관측된다.
백악관과 가까운 한 공화당 인사는 <폴리티코>에 “폭력적인 폭도들은 대선의 해에 트럼프에게 정치적 금광”이라며 “다만 좌파가 준 틈을 트럼프가 이용할 때만 그러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로서는 일부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경제 악화라는 위기까지 돌파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성경을 끼고 백악관 앞 세인트 존 교회까지 걸어가 기념사진을 찍은 것도 지지층을 겨냥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에서 직선거리로 약 160m에 있는 이 교회는 ‘대통령의 교회’로 불린다. 이 교회는 전날 밤 시위 과정에서 지하에서 불이 피어올라 곧 진화됐다. 트럼프의 ‘깜짝 방문’을 위해 경찰은 워싱턴의 통행금지 발효시간(오후 7시) 25분 전부터 그 동선상에 있는 라파예트광장의 시위대에 섬광탄과 최루탄, 고무탄을 쏴서 밀어냈다. 트럼프는 교회 표지판 앞에서 성경을 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이어 “우리는 위대한 나라를 갖고 있다. 계속 그렇게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 뒤 다시 걸어서 백악관에 복귀했다.
종교계에서는 트럼프의 ‘기행’과 관련해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이 교회를 관할하는 성공회 워싱턴교구의 메리앤 버디 주교는 “대통령이 예수의 가르침 및 우리 교회가 대변하는 것에 반대되는 메시지를 위해 성경과 내 교구의 교회를 허락 없이 배경으로 썼다”며 “나는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미국 전역에서는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졌다. 워싱턴,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필라델피아 등 40여개 도시에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시민들은 저항하며 즉시 해산하지 않았다. 일부 상점의 유리창이 깨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투입됐다.
한편,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검시관은 플로이드의 사인이 “경찰의 제압과 억압, 목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심폐 기능 정지”라며 ‘살인’으로 분류했다고 <에이피>(AP) 등이 보도했다. 앞서 헤너핀 카운티 검시관은 예비 부검 때 외상에 의한 질식이나 교살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낸 것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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