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맞설 지정학적 요충지
그리스 EU 탈퇴땐 러시아 영향력↑
대유럽 수출 위축·금융시장 불안도
그리스 EU 탈퇴땐 러시아 영향력↑
대유럽 수출 위축·금융시장 불안도
미국은 몇달 전부터 그리스가 추가적인 구조개혁을 수용하는 대가로 서방 채권단이 부채를 경감시켜주는 타협안을 양쪽이 받아들일 것을 압박해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주 초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이 문제로 전화 통화를 했다. 또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최근 6개월간 유럽 관리들과 60여차례의 전화 또는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 부결로 이런 바람이 산산조각나면서 미국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오바마 행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우크라이나를 놓고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전선이 발칸반도로까지 확장될 ‘지정학적 위기’ 가능성이다. 이는 그리스가 서방 채권단과 끝내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유로존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마저 탈퇴할 경우 현실화될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유럽 국가들의 옆구리를 찔러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토록 하고 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교묘하게 유럽을 분열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 그리스 좌파 정권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미국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그리스 사태를 “상당히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도록 하는 타협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발칸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그리스는 1940년대 말 동-서 냉전의 대표적인 초기 격전장이었다. 미국은 1947년 3월 그리스·터키에 대한 소련의 위협을 봉쇄한다는 트루먼 독트린과 1948년부터 시작된 유럽 경제부흥 계획인 마셜플랜을 통해 그리스를 지원해 그리스 공산당을 패배시켰다. 그 결과 그리스는 나토에 가입해 발칸반도에서 미국의 전진기지 구실을 했다.
두번째는 경제적 측면이다. 그리스 경제는 규모는 작지만 유로존 가입국으로, 상당기간 유럽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미국은 대유럽 수출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통화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준은 이르면 오는 9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첫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 중인데, 유럽 경제가 불안하면 인상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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