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피카소’라 불리는 현대예술가 비크 무니스는 쓰레기, 잼, 모래, 설탕 등 일상의 소재를 활용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무니스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경제적 계급에 관계없이 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지난 7일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브라질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뒷배경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픽처스 오브 페이퍼>다. 리우데자네이루/허승 기자
[토요판] 커버스토리
비크 무니스 인터뷰
비크 무니스 인터뷰
▶ 브라질 월드컵이 개막했습니다. 12일(현지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신나게 개막공연을 하고 이어진 개막전에서 브라질이 크로아티아를 3-1로 이겼습니다. 브라질은 축제 분위기가 됐을까요? 상파울루 거리 한편에선 격렬한 월드컵 반대 시위도 벌어졌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의 속살을 작품 속에 담아온 ‘브라질의 피카소’ 비크 무니스를 만나 브라질에 대해 물었습니다.
병뚜껑, 폐필름, 신발 밑창, 페트병, 터진 축구공….
지난 4월 국내 개봉된 영화 <웨이스트랜드>(Waste Land)는 쓰레기로 예술을 구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계 최대 쓰레기매립장인 브라질의 자르징 그라마슈에 버려진 것들은 카타도르(쓰레기 줍는 이의 포르투갈어)의 손을 거쳐 성자나 현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막장 인생’들은 스스로의 예술적 성취에 감격했다.
쓰레기에서 예술을 창작하는 ‘역발상’과 ‘실험정신’은 세계를 감동시켰다. 특히 난지도를 기억하는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단순한 감동 이상이었다. 그 뒤에는 악취와 질병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2년간 리우데자네이루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산 브라질 현대예술의 간판 비크 무니스(Vik Muniz, 53)가 있다. 그는 브라질의 피카소로 불린다. 무니스가 2009년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현대미술관(MAM: Museu de Arte Moderna)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개인 전시회로는 피카소에 이어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국내 언론 최초로 그와 만났다.
소수자의 시선과 실험적인 소재로 현대 예술에 새바람을 몰고 온 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월드컵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월드컵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이 여기서 열린다 하더라도 서민들은 입장권을 살 돈도 없다.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들의 시위는 정당하다.” 브라질의 ‘피카소’는 예술가이기 전에 사회운동가였다.
7일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로 가는 길은 혼잡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발을 동동댔지만, 정작 시간을 어긴 것은 그였다. 20분이나 늦게 온 무니스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만 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더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결례를 만회했다.
카타도르는 어떻게 최고시청률 주인공이 됐나
-당신은 2007년부터 2년간 쓰레기 매립지인 자르징 그라마슈(Jardim Gramacho)에서 카타도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한번도 예술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한번도 미술관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쓰레기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쓰레기를 아름답게 보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쓰레기를 아름다운 예술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카타도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작품 활동을 통해 그들 자신의 삶이 변화했고, 다른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됐다. 나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처음부터 카타도르와 함께 작업할 생각은 아니었나?
“그렇다.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찾아간 것처럼 표현됐지만, 사실 처음 그라마슈로 갈 때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곳에 찾아가서 그들을 본 뒤에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에서 당신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작품 활동이 무엇을 변화시켰나?
“나는 이 영화에 출연한 카타도르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상상은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술의 중요성은 우리의 정신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인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언어학이다. 내가 작품 활동을 하기 전까지 브라질 사람들은 카타도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이 영화가 개봉한 뒤 브라질에서는 카타도르가 하나의 계급으로 인정받게 됐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카타도르의 리더 치앙(Tiao Santos)이 쓰레기 속에서 주운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카타도르를 후원하고 지지하게 됐다. 2012년에는 <아베니다 브라질>(Avenida Brasil)이라는 카타도르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텔레비전에서 황금시간대인 저녁 8시에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마지막 회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카타도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이전에는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웠는데 여기서는 잘생긴 영웅으로 그려졌다. 이제 카타도르는 좀더 조직화되어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예술의 주된 구실은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카타도르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상파울루의 가난한 지역 출신
간판 만드는 광고회사 다니다
18살 거리에서 다리에 총 맞고
그 위자료로 뉴욕서 미술활동
‘슈거 칠드런’으로 첫 명성
악취와 질병 위험 무릅쓰고
2년간 자르징 그라마슈라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살아가며
카타도르들과 함께 쓰레기로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다 비센치 조제 지올리베이라 무니스(Vicente Jose de Oliveira Muniz)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 무니스는 1961년 상파울루의 가난한 노동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 대신 무니스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글 읽는 법을 처음 가르친 것도 할머니였는데 할머니는 철자법 대신 단어 하나하나를 통째로 무니스에게 알려줬다. 할머니에게 독특하게 글을 배운 무니스는 나중에 학교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울 때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무니스는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더 흥미를 느꼈고 예술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간판을 만드는 광고회사에 다니던 무니스는 18살에 길거리에서 싸움에 휘말려 다리에 총을 맞았다. 이때 가해자에게서 받은 위자료로 무니스는 뉴욕에 갔다. 1983년 22살의 무니스는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하며 조각과 그림, 사진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세인트키츠섬 사탕수수농장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아동노동을 고발하기 위해 설탕으로 아이들을 그린 ‘슈거 칠드런’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축구의 로또 기능, 한편으로는 긍정적 -당신은 소외된 사람들을 예술적으로 조명해왔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 역시 상파울루의 가난한 지역 출신이다. 아버지는 음식점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전화국에서 일을 하며 나를 키웠다. 그래서 나처럼 가난한 사람과 예술 사이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현대 예술은 상류층을 위한 예술이다.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은 미술관에 가볼 일이 없었다. 내 작품 활동은 대중문화와 현대 예술을 연결시킨다. 나는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당신은 이번에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공을 소재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것은 축구공이 아니다’(This is not a Ball)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웨이스트랜드’와 다른 형식의 작품이다. 멕시코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것인데 방송사에서 공을 주제로 해서 경기장에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대 예술을 축구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엔 종교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축구는 가장 종합적인 활동이고 수많은 관중들이 관람한다. 나의 관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예술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나? “매우 좋아한다. 다만 축구를 정말 못하는 예술가다. 재능이 전혀 없어서 좌절했다.(웃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축구란 무엇인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인가, 더 나은 삶을 지향하게 하는 꿈인가? “둘 다 맞다. 브라질 사람들은 모두 축구를 필요로 한다. 축구를 하면 현실을 잊게 된다. 축구는 로또와 같다. 가난한 사람이 페라리를 타고 바르셀로나 클럽에서 공을 찰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은 어린이들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으냐. 청소년들은 래퍼나 농구 선수가 되길 꿈꾼다. 이렇게 롤모델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작년에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열릴 때 상파울루에서 버스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단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했다. 브라질에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매우 보기 좋은 시위였는데 상파울루 정부는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했다. 그다음 날 다섯배가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것은 월드컵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처음에 정부는 경기장을 짓는 비용 중 98%가 민간자본으로 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96%가 우리가 세금을 낸 정부 예산이고 민간자본은 4%뿐이다. 비용도 점점 늘어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사회기반시설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요구했는데 나아진 건 없다. 돈은 전부 경기장 짓는 데에만 들어간 것이다. 모든 국민이 경기장 짓는 데 돈을 낸 거다! 가난한 국민들은 여기서 월드컵이 열린다 하더라도 입장권을 살 돈도 없다. 말이 안 되는 거다. 문제는 월드컵 개최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태도다. 지금 물가가 비싸서 슈퍼마켓에 가도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경기장을 지었어도 들어갈 돈이 없는데… 이건 잘못된 거다. 그래서 지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정당하다. 이건 월드컵 반대가 아니라 정부에 대항하는 거다. 정부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룰라 노동자당에 실망해 이젠 안 찍어 -브라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 학교를 세웠다. 정치인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교육에 대한 공약을 믿고 투표하면 지키지 않는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겉으로 성과가 빨리 나오는 게 아니다. 교육은 10~15년 정도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해서 정부는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다리를 건설하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박물관은 잘 짓는데 정작 필요한 학교는 짓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에 투자하는 나라 아니냐. 비록 외교적으로 북한과 긴장관계에 있어서 국방비에 투자하는 돈도 많지만 어쨌든 교육에 대한 투자가 높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도 잠재력이 있고 경쟁력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된 나라다. 브라질은 그렇게 못하는데 이게 다 교육 때문이다. 교육을 바꿀 만한 유능한 정치인이 없다. 브라질 정치인들은 브라질의 내일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내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한국 사람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 당신들은 이해 못 할 거다.” 무니스는 2006년부터 센트루 이스파시아우 비크 무니스(Sentro Espacial Vik Muniz)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파벨라)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 400여명에게 예술을 비롯해 글쓰기 등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은 브라질에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만약 브라질 사람들이 수준 높은 교육을 접할 수 있었다면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을 것이다. 브라질 정치는 정체돼 있다. 교육을 통해서 윤리의식이 향상되면 정치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정치가 부패해서 발전을 못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을 하나 지으면 마무리 비용이 초기 비용의 10배나 든다. 부패 때문이다. 부패로 공적자금을 거덜낸다.” -2002년 노동자당(PT)의 룰라와 그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가 정권을 잡은 뒤로 브라질 사람들은 정부가 교육에 투자하길 기대하지 않았나? “많은 기대를 했다. 난 20년간 노동자당을 지지하고 있다. 아주 예전부터 계속 룰라를 지지했었다. 반대편의 민주운동당(PMDB)은 예전 군부세력과 연계된 정당이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 때 교육과 문화 등 낙후된 사회구조를 개혁하려는 큰 노력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당은 의회에서 많은 자리를 확보해야 했고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이들은 세력을 넓히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했다. 룰라 정권 시절의 부정부패 스캔들 이후로 나는 브라질의 노동자당도 다른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멘살랑’(Mensalao)으로 불리는 이 스캔들은 룰라 전 대통령 정부 때인 2005년 6월 브라질노동당(PTB) 대표였던 호베르투 제페르송 전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노동자당이 의회에서 정부 입법안에 찬성표를 던져주는 대가로 매달 3만헤알을 준 것을 비유해 ‘월급 스캔들’이라고도 부른다. 이 사건으로 룰라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고 한때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다. 브라질 연방 검찰은 이듬해 연루자 40명을 기소했고 법원은 40명 중 25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브라질 사람들의 실망감이 컸나? “초기에 노동자당(PT)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정부에 실망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망하더라도 계속 노동자당에 투표한다.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룰라의 빈곤층 지원정책)가 가난한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창문 바꾸는 게 아니라 닦는 것 미국의 경우 여당과 야당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공약이 있는데 브라질 정당은 그렇지 않다. 많은 정당들이 있지만 지지하는 정당을 바꾸게 할 만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는다. 브라질의 정치는 포퓰리즘이다. 나는 지금껏 단 한번도 민주운동당에 투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민주운동당에 투표할 것이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과정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의견을 다시 돌아오게도 한다. 나는 서로 자기한테 투표하라는 정치인들의 유세를 듣는 것이 좋다. 정당들이 경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는데, 정치인들은 변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예술가로서 나의 역할은 사람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창문이 더러운데 내가 창문을 바꿀 수는 없고 사람들이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닦아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보다시피 내 작품은 정치와 관련이 없다. 나의 작품 활동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언어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치를 위한 것이지만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술이 없더라도 변화한다. 하지만 예술은 관계에 대한 인식을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볼 때 브라질 시민들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월드컵 반대 시위만 봐도 정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가? “기술의 발달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정치에 관한 의견들이 교류되고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인터넷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전세계적으로 비판의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스마트폰을 통해 성장했다. 사람들은 좀더 나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랍의 봄’처럼 매우 빨리 일어나고 있지만 현실 정치는 기술의 발달과 같은 속도로 변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경기장 건설에 정부 돈
96% 들었는데 가난한 이들은
입장권 살 돈이 없다고 하니
정부에 분노를 표출하는 거다
월드컵 반대 시위는 정당하다”
“한국·일본은 부끄러움 있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 뭐든지 시도한다
거기서 창의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벼락치기 심하다는 것” -이번 월드컵 반대 시위에는 교육과 의료, 교통, 안전 등 브라질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이슈화되고 있다. 이번 시위가 근본적인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다. 지금 시위대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하고 과격하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정권과 싸우게 된다면 그것은 폭동이다. 이러한 저항을 통해 더 나은 정부를 만들게 된다면 진화다. 그런데 과격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이들 중 대부분은 노동계급이나 빈민이 아닌 관찰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은 브라질의 성향이 아니다. 비록 현재 브라질은 마약밀매, 폭력, 강도 살인이 만연한 나라지만 예전부터 전쟁이란 건 없었다.” 아르헨티나 대신 브라질이 우승한다 -당신이 브라질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브라질 사람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다. 뭐든지 시도해본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미국이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사람인데 브라질 사람으로서의 특징이 있다면 뭐든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이 그러하다. 한국과 일본은 부끄러움이 많다. 잘못할까봐 두렵고 부끄러워서 시도를 못 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나처럼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다. 창의성은 필요성과 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면, 브라질 사람들은 차가 고장났을 때 카센터에 가기도 전에 먼저 차를 열고 고치려고 시도해 본다. 수리비용이 없어서 스스로 고쳐야 하는 것이 필요성이며, 또 될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이 가능성이다.” -이러한 창의성이 브라질 축구에도 존재하나? “그렇다. 브라질 축구는 매우 창의적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개인기가 뛰어난 반면 조직력은 부족하다.” -이번 브라질 대표팀은 예전에 비해 조직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아직도 개인기 위주다. 항상 그래 왔듯이 개인기는 뛰어나고 조직력은 그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훌륭한 감독이 있어서 우승할 것 같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은 경력이 화려한데 엄격하거나 거칠지 않게 선수들을 대해서 선수들이 감독을 존중한다. 선수들의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항상 훌륭한 감독이 이끄는 팀이 우승했다. 독일도 팀워크가 좋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잘하지만 우승할 일이 없을 것이다. 브라질과 앙숙인데 브라질 땅에서 우승한다면 브라질 사람들이 매우 화가 날 것이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월드컵이란 무엇인가? “1950년 결승전에서 전세계에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루과이한테 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린 더 이상 후진국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면 정부도 변할 것 같다. 하지만 월드컵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까지도 브라질은 경기장이나 부대시설들을 짓고 있다. 이것은 브라질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인데 마지막에 벼락치기를 한다. 브라질은 미래의 국가라는 말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냥 현재의 국가다. 미래를 계획할 만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웃음) 그래도 브라질 사람들은 뒷심이 있어서 잘될 것 같다.” -축구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은가?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이 많다. 장애인 선수들에 대해 알고 싶다. 장애인 선수들이 스포츠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다.” 리우데자네이루/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통역 안인선
>>> 영화 ‘웨이스트랜드’
201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발표된 루시 워커(미국)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웨이스트랜드>는 쓰레기처럼 아무도 아름다워하지 않는 소재를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브라질 출신의 괴짜 예술가 비크 무니스가 작품 활동을 위해 찾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쓰레기 매립지 자르징 그라마슈에서 재활용품을 주우며 사는 노동자 카타도르를 만나 그들을 작품 활동에 참여시키며 겪게 되는 삶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10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었다.
워커는 2007년부터 2년간 무니스와 카타도르의 행적을 추적하며 쓰레기가 위대한 예술품이 되는 과정과 카타도르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병렬적으로 그린다. 이 영화는 브라질 안에서 매우 큰 화제가 되었고 자르징 그라마슈 카타도르협회 대표 치앙을 비롯해 이 영화에 출연한 7명의 카타도르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영화가 방영된 이후 브라질 국영채널 <글로부 텔레비전>에서는 카타도르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아베니다 브라질>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4월 개봉돼 화제가 됐다.
간판 만드는 광고회사 다니다
18살 거리에서 다리에 총 맞고
그 위자료로 뉴욕서 미술활동
‘슈거 칠드런’으로 첫 명성
악취와 질병 위험 무릅쓰고
2년간 자르징 그라마슈라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살아가며
카타도르들과 함께 쓰레기로
놀라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다 비센치 조제 지올리베이라 무니스(Vicente Jose de Oliveira Muniz)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는 무니스는 1961년 상파울루의 가난한 노동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 대신 무니스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글 읽는 법을 처음 가르친 것도 할머니였는데 할머니는 철자법 대신 단어 하나하나를 통째로 무니스에게 알려줬다. 할머니에게 독특하게 글을 배운 무니스는 나중에 학교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울 때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무니스는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더 흥미를 느꼈고 예술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간판을 만드는 광고회사에 다니던 무니스는 18살에 길거리에서 싸움에 휘말려 다리에 총을 맞았다. 이때 가해자에게서 받은 위자료로 무니스는 뉴욕에 갔다. 1983년 22살의 무니스는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하며 조각과 그림, 사진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에 있는 세인트키츠섬 사탕수수농장에서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아동노동을 고발하기 위해 설탕으로 아이들을 그린 ‘슈거 칠드런’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축구의 로또 기능, 한편으로는 긍정적 -당신은 소외된 사람들을 예술적으로 조명해왔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 역시 상파울루의 가난한 지역 출신이다. 아버지는 음식점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전화국에서 일을 하며 나를 키웠다. 그래서 나처럼 가난한 사람과 예술 사이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현대 예술은 상류층을 위한 예술이다.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은 미술관에 가볼 일이 없었다. 내 작품 활동은 대중문화와 현대 예술을 연결시킨다. 나는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당신은 이번에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축구공을 소재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것은 축구공이 아니다’(This is not a Ball)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웨이스트랜드’와 다른 형식의 작품이다. 멕시코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것인데 방송사에서 공을 주제로 해서 경기장에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대 예술을 축구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엔 종교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축구는 가장 종합적인 활동이고 수많은 관중들이 관람한다. 나의 관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예술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나? “매우 좋아한다. 다만 축구를 정말 못하는 예술가다. 재능이 전혀 없어서 좌절했다.(웃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축구란 무엇인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인가, 더 나은 삶을 지향하게 하는 꿈인가? “둘 다 맞다. 브라질 사람들은 모두 축구를 필요로 한다. 축구를 하면 현실을 잊게 된다. 축구는 로또와 같다. 가난한 사람이 페라리를 타고 바르셀로나 클럽에서 공을 찰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은 어린이들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으냐. 청소년들은 래퍼나 농구 선수가 되길 꿈꾼다. 이렇게 롤모델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작년에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열릴 때 상파울루에서 버스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단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했다. 브라질에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매우 보기 좋은 시위였는데 상파울루 정부는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했다. 그다음 날 다섯배가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것은 월드컵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처음에 정부는 경기장을 짓는 비용 중 98%가 민간자본으로 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다. 96%가 우리가 세금을 낸 정부 예산이고 민간자본은 4%뿐이다. 비용도 점점 늘어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사회기반시설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요구했는데 나아진 건 없다. 돈은 전부 경기장 짓는 데에만 들어간 것이다. 모든 국민이 경기장 짓는 데 돈을 낸 거다! 가난한 국민들은 여기서 월드컵이 열린다 하더라도 입장권을 살 돈도 없다. 말이 안 되는 거다. 문제는 월드컵 개최 자체가 아니라 정부의 태도다. 지금 물가가 비싸서 슈퍼마켓에 가도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경기장을 지었어도 들어갈 돈이 없는데… 이건 잘못된 거다. 그래서 지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정당하다. 이건 월드컵 반대가 아니라 정부에 대항하는 거다. 정부의 방식이 잘못되었다.” 룰라 노동자당에 실망해 이젠 안 찍어 -브라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 학교를 세웠다. 정치인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교육에 대한 공약을 믿고 투표하면 지키지 않는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겉으로 성과가 빨리 나오는 게 아니다. 교육은 10~15년 정도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해서 정부는 교육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다리를 건설하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박물관은 잘 짓는데 정작 필요한 학교는 짓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에 투자하는 나라 아니냐. 비록 외교적으로 북한과 긴장관계에 있어서 국방비에 투자하는 돈도 많지만 어쨌든 교육에 대한 투자가 높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도 잠재력이 있고 경쟁력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된 나라다. 브라질은 그렇게 못하는데 이게 다 교육 때문이다. 교육을 바꿀 만한 유능한 정치인이 없다. 브라질 정치인들은 브라질의 내일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내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한국 사람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 당신들은 이해 못 할 거다.” 무니스는 2006년부터 센트루 이스파시아우 비크 무니스(Sentro Espacial Vik Muniz)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파벨라)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 400여명에게 예술을 비롯해 글쓰기 등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은 브라질에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만약 브라질 사람들이 수준 높은 교육을 접할 수 있었다면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을 것이다. 브라질 정치는 정체돼 있다. 교육을 통해서 윤리의식이 향상되면 정치도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정치가 부패해서 발전을 못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을 하나 지으면 마무리 비용이 초기 비용의 10배나 든다. 부패 때문이다. 부패로 공적자금을 거덜낸다.” -2002년 노동자당(PT)의 룰라와 그 뒤를 이은 지우마 호세프가 정권을 잡은 뒤로 브라질 사람들은 정부가 교육에 투자하길 기대하지 않았나? “많은 기대를 했다. 난 20년간 노동자당을 지지하고 있다. 아주 예전부터 계속 룰라를 지지했었다. 반대편의 민주운동당(PMDB)은 예전 군부세력과 연계된 정당이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 때 교육과 문화 등 낙후된 사회구조를 개혁하려는 큰 노력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당은 의회에서 많은 자리를 확보해야 했고 이를 위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이들은 세력을 넓히고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했다. 룰라 정권 시절의 부정부패 스캔들 이후로 나는 브라질의 노동자당도 다른 정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멘살랑’(Mensalao)으로 불리는 이 스캔들은 룰라 전 대통령 정부 때인 2005년 6월 브라질노동당(PTB) 대표였던 호베르투 제페르송 전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노동자당이 의회에서 정부 입법안에 찬성표를 던져주는 대가로 매달 3만헤알을 준 것을 비유해 ‘월급 스캔들’이라고도 부른다. 이 사건으로 룰라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고 한때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다. 브라질 연방 검찰은 이듬해 연루자 40명을 기소했고 법원은 40명 중 25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브라질 사람들의 실망감이 컸나? “초기에 노동자당(PT)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정부에 실망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망하더라도 계속 노동자당에 투표한다.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룰라의 빈곤층 지원정책)가 가난한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창문 바꾸는 게 아니라 닦는 것 미국의 경우 여당과 야당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공약이 있는데 브라질 정당은 그렇지 않다. 많은 정당들이 있지만 지지하는 정당을 바꾸게 할 만한 공약을 내세우지 않는다. 브라질의 정치는 포퓰리즘이다. 나는 지금껏 단 한번도 민주운동당에 투표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민주운동당에 투표할 것이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과정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의견을 다시 돌아오게도 한다. 나는 서로 자기한테 투표하라는 정치인들의 유세를 듣는 것이 좋다. 정당들이 경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는데, 정치인들은 변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예술가로서 나의 역할은 사람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창문이 더러운데 내가 창문을 바꿀 수는 없고 사람들이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닦아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보다시피 내 작품은 정치와 관련이 없다. 나의 작품 활동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언어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정치를 위한 것이지만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술이 없더라도 변화한다. 하지만 예술은 관계에 대한 인식을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한다.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게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볼 때 브라질 시민들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월드컵 반대 시위만 봐도 정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가? “기술의 발달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정치에 관한 의견들이 교류되고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인터넷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전세계적으로 비판의식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스마트폰을 통해 성장했다. 사람들은 좀더 나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랍의 봄’처럼 매우 빨리 일어나고 있지만 현실 정치는 기술의 발달과 같은 속도로 변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경기장 건설에 정부 돈
96% 들었는데 가난한 이들은
입장권 살 돈이 없다고 하니
정부에 분노를 표출하는 거다
월드컵 반대 시위는 정당하다”
“한국·일본은 부끄러움 있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 뭐든지 시도한다
거기서 창의성이 나오는데
문제는 벼락치기 심하다는 것” -이번 월드컵 반대 시위에는 교육과 의료, 교통, 안전 등 브라질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이슈화되고 있다. 이번 시위가 근본적인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니다. 지금 시위대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하고 과격하다.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정권과 싸우게 된다면 그것은 폭동이다. 이러한 저항을 통해 더 나은 정부를 만들게 된다면 진화다. 그런데 과격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다. 이들 중 대부분은 노동계급이나 빈민이 아닌 관찰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은 브라질의 성향이 아니다. 비록 현재 브라질은 마약밀매, 폭력, 강도 살인이 만연한 나라지만 예전부터 전쟁이란 건 없었다.” 아르헨티나 대신 브라질이 우승한다 -당신이 브라질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브라질 사람들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다. 뭐든지 시도해본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미국이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사람인데 브라질 사람으로서의 특징이 있다면 뭐든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이 그러하다. 한국과 일본은 부끄러움이 많다. 잘못할까봐 두렵고 부끄러워서 시도를 못 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나처럼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다. 창의성은 필요성과 가능성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면, 브라질 사람들은 차가 고장났을 때 카센터에 가기도 전에 먼저 차를 열고 고치려고 시도해 본다. 수리비용이 없어서 스스로 고쳐야 하는 것이 필요성이며, 또 될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이 가능성이다.” -이러한 창의성이 브라질 축구에도 존재하나? “그렇다. 브라질 축구는 매우 창의적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개인기가 뛰어난 반면 조직력은 부족하다.” -이번 브라질 대표팀은 예전에 비해 조직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아직도 개인기 위주다. 항상 그래 왔듯이 개인기는 뛰어나고 조직력은 그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훌륭한 감독이 있어서 우승할 것 같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은 경력이 화려한데 엄격하거나 거칠지 않게 선수들을 대해서 선수들이 감독을 존중한다. 선수들의 개인기도 중요하지만, 항상 훌륭한 감독이 이끄는 팀이 우승했다. 독일도 팀워크가 좋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잘하지만 우승할 일이 없을 것이다. 브라질과 앙숙인데 브라질 땅에서 우승한다면 브라질 사람들이 매우 화가 날 것이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월드컵이란 무엇인가? “1950년 결승전에서 전세계에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루과이한테 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린 더 이상 후진국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면 정부도 변할 것 같다. 하지만 월드컵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까지도 브라질은 경기장이나 부대시설들을 짓고 있다. 이것은 브라질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인데 마지막에 벼락치기를 한다. 브라질은 미래의 국가라는 말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냥 현재의 국가다. 미래를 계획할 만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웃음) 그래도 브라질 사람들은 뒷심이 있어서 잘될 것 같다.” -축구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은가?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오히려 장애인올림픽에 관심이 많다. 장애인 선수들에 대해 알고 싶다. 장애인 선수들이 스포츠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다.” 리우데자네이루/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통역 안인선
영화 ‘웨이스트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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