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 ‘파일롤리 에스테이트’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우드사이드/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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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나 의사소통 오류를 막기 위해 당신과 내가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경쟁이 갈등으로 바뀌지 않게 해야 하고 책임감 있게 이를 관리해야 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다. 두 나라 국민들을 이롭게 하고, 인류 진보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만난 미·중 정상이 회담 머리발언에서 강조한 것은 세계를 이끄는 두개 대국의 ‘책임감’과 ‘직접 소통의 중요성’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의견이 늘 일치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는 늘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유용했다”고 말했고, 시 주석 역시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중-미는 지난 50년 간 결코 부드럽게 항해하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갔다”고 화담했다. 세계 질서에서 가장 중대한 의미를 갖는 미-중의 전략적 경쟁 관계와 관련해 두 지도자가 개인적 인연까지 거론하며 ‘안정’을 추구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 양쪽 갈등은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를 한마디로 줄이면 ‘미·중이 충돌 방지를 위해 서로 책임감을 갖고 소통하며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단절된 군사 소통 채널이 복원되고, 양국 협력이 필요한 △인공지능(AI) △기후 △마약 대책 등에서 워킹그룹을 만들어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국 간 전략 경쟁의 두 핵심 이슈인 ‘대만 문제’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재편’에 대해선 서로의 이견만을 확인했을 뿐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악화됐던 양국 관계가 ‘펠로시 사건’ 이전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물론, 이 역시 적은 소득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집권 직후부터 인류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변곡점 위에 있다며 중국과 전략 경쟁을 강화해왔다. 중국과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투자 제한 등의 정책을 쏟아냈다. 안보 측면에서는 대만해협·남중국해 위기가 고조됐고, ‘기구 사건’ 등으로 앙금은 더 깊어져갔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1년 전 대면 회담 뒤로는 통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국 정상들이 직접 만나 관계 안정화를 약속하며 두 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 등은 다소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번 회담 성공을 위해 미국은 회담장 선정에도 무게를 실었다. ‘파일롤리 에스테이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5㎞ 떨어진 곳으로, 금광 재벌이 100여년 전 만든 주거지다. 역사 유산으로 관리되는 이곳은 방 56개를 갖춘 건물에 넓은 정원을 갖추고 있다. 21개국이 참가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만남이지만, 별도의 중요한 회담임을 강조하면서 시 주석을 예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각각 참모 12명이 배석한 확대회담과 오찬까지 한 점도 마찬가지다.
미·중이 ‘전술적 휴전’에 나선 것은 양쪽이 마주하고 있는 안팎의 도전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대선을 1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두개의 전쟁을 간접 수행하고 있다. 이 사안들에 대응하기에도 벅찬데 대만해협에서 충돌이 발생하거나 중국이 러시아·이란 등과 대놓고 밀착하면 큰 전략적 낭패를 맛볼 수 있다. 급한 대로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는 대중 관계를 ‘관리’하려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3연임을 확정한 시 주석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는데도 경제 회복이 더딘 가운데 부동산 경기는 침체하고 있고, 청년실업률은 수치조차 발표할 수 없는 정도로 치솟고 있다.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내세운 미국의 수출·투자 통제 등 압박이 강화되면서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시 주석이 16일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만찬에 초청한 것도 투자 축소 움직임에 대응하는 노력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등 미국이 주도하는 포위 전략의 예봉도 무디게 만들어야 한다.
휴전엔 동의했지만, 양국 모두 상대한테 갖는 본질적 불만은 가시지 않았다. 시 주석은 “미국이 수출 통제와 투자 심사, 일방적 제재를 지속해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따졌고, 미국은 중국이 내년 1월 치러질 대만 대선에 개입하지 않을까 경계를 꺾지 않고 있다. 결국, 핵심 쟁점에서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미-중 사이 갈등의 파고는 언제든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워싱턴 베이징/이본영 최현준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