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칸유니스/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을 포위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백악관이 병원에서 교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악관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병원들을 군사적 용도로 쓴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 쪽 주장에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줬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 시비에스(CBS) 방송에 출연해 알시파 병원의 위기에 대한 질문에 “미국은 무고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병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이스라엘군과 이 문제를 적극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알시파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포위 작전에 따른 전기 공급 중단 등으로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와 중환자실 환자 등 여러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설리번 보좌관은 이스라엘군을 지목해 공격 중단을 촉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에 병원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냐’는 질문에 “하마스는 지휘와 통제, 무기 보관, 병력 수용을 위해 병원들을 비롯한 많은 민간 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공개적 보고가 있다”며 “이는 전쟁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병원 입원 환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그럼 알시파 병원에 하마스 지휘본부가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동의하냐’는 질문에는 “특정 병원에 대한 특정한 주장을 다루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하마스는 역사적으로, 또 이번 분쟁에서도 병원들과 다른 민간 시설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공개적 보고가 있다”고 다시 말했다. 이는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휘본부가 있다는 이스라엘군의 주장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제 인도법은 전쟁 중에도 병원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십자사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병원은 그런 지위를 잃는다는 기준을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알시파 병원 지하에 하마스 지휘본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마스는 이를 부인한다.
한편 설리번 보좌관은 하마스 제거 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강제 이주도 불가하다는 미국 행정부의 원칙을 다시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통합해야 하지만 “누가 통치할지는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8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까지 통치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는 다소 다른 얘기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순응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가자지구 통치 주체로 세우려고 한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들린다.
이런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2일 미국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 가자지구를 누가 통치할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우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의 어떤 세력도 그런 능력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필요한 기간 동안” 가자지구의 치안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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