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 백악관을 방문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을 진행 중인 러시아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한 것에 대해 백악관과 미국 국방부가 “속아선 안 된다며” 기만술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은 29일(현지시각) 출입기자들에게 러시아의 발표에 “속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피비에스>(PBS) 방송이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면서 기자들 질문에 “그들의 행동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며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였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우리는 속여서도 안 되고, 누구도 갑자기 키이우 주변에서 공격을 줄이겠다는 크렘린의 주장이나 러시아가 모든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는 보도를 갖고 우리를 속여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규모 러시아군 병력이 키이우 지역을 떠났지만 재배치 차원으로 보이며 “진짜 철수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키이우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여전히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에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방부의 이런 경고는 이날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토드 월터스 미군 유럽사령관 겸 나토 연합군 사령관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월터스 사령관은 러시아가 “중대한 전략 전환”의 일환으로 키이우 주변에서 병력을 빼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전략 전환’ 배경으로 거론되는 손실 규모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쪽은 이날 일반적 관측을 뛰어넘는 주장을 내놨다. 세르히 키슬리차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대사는 러시아군이 병력 1만7천명, 장갑차 1700대, 탱크 600대, 포 300문, 군용기 127대, 헬기 129대, 약 100대의 로켓 발사대, 54대의 방공시스템을 잃었다며 “러시아의 비무장화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에 비하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본 손실은 별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백악관은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달립 싱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30일부터 이틀간 인도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싱 부보좌관의 방문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31일부터 이틀 동안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발표됐다. 인도를 놓고 미-러가 각축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회의체인 쿼드의 구성 국가이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중립’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러시아와도 밀착해온 인도는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141개국이 러시아 비난 결의를 할 때 기권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인도는 좀 흔들린다”며 아쉬움을 나타낸 바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게 미국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면서도 “(인도 지도자들은) 역사책이 쓰여질 때 어디에 서게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비교적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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