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연임이 저지된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소문로 대한항공 빌딩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한항공이 27일 주주총회에서 표결에 부친 4개 안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았던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건은 2.5%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대한항공 정관상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출석 주주의 3분의 2(66.66%)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날 출석 주주들은 찬성 64.1%, 반대 35.9%의 표를 던졌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정관의 이사 선임 요건을 까다롭게 바꾼 것이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 지분 구조는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고, 국민연금 11.70%, 외국인 지분 24.76%, 기타 주주 30.19%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타 주주에는 기관과 소액주주 등이 포함된다. 조 회장 쪽은 사내주주인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 설득하며 찬성 위임장 확보에 사활을 걸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과 국외 공적 기금 등이 일제히 연임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 24%가 넘는 외국인 주주가 조 회장한테서 등을 돌리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아이에스에스(ISS)와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연임에 반대투표를 권고했다. “여러 가지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서 불구속 기소된 상태”(아이에스에스), “사익 편취를 위해 대한항공 등 계열사의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는 기소 내용”(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이유에서다. 여기에 국외 공적 기금인 플로리다연금과 캐나다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 등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가세했다. 외국인 주주들은 국내 주주들보다 경영 윤리에 훨씬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전 다른 상장사보다 엄격하게 이사 선임 요건을 높여둔 게 부메랑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1999년 이사 선임과 해임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출석 주주의 절반 이상의 동의만 받도록 하는 일반 상장사의 이사 선임 요건보다 훨씬 까다롭다. 외환위기 때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당시 항공법(항공안전법 전신)에 따라도 외국이나 외국 법인 등은 항공 사업이 제한되는 상황이어서 과하게 문턱을 높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33.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원치 않는 인사가 회사의 이사가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번 주총의 승패를 가른 표 차이는 단 2.5%포인트였지만, 20년 전 이사 선임에 관한 정관 변경이 결국 조 회장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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