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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재벌총수, 주주 손에 퇴출당하다

등록 2019-03-27 19:03수정 2019-03-28 09:55

주총서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
20년 만에 대표이사직 물러나

2대주주 국민연금·소액주주들
재벌가 ‘기업가치 훼손’에 제동

조 회장쪽, 경영권 박탈에 불복
“미등기이사로 경영권 행사할 것”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해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재벌 총수가 회사 주인인 주주들의 선택으로 이사진에서 퇴출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조 회장 쪽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미등기이사로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불복 의사를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조 회장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대한항공 주주들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이사 연임안을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했다. 주총 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은 “사전에 위임장과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주주, 외국인 주주들의 (찬반) 주식 수를 파악했다”며 현장 표결을 진행하지 않고 곧바로 부결을 선언했다. 이로써 1999년 4월, 만 50살에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된 조 회장은 꼭 20년 만에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라 이사로 선임되려면 주총 참석 주주 3분의 2(66.66%)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날 조 회장은 2.5%포인트 부족한 64.1%의 찬성표를 확보했다.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의 대한항공 지분은 33.35%다.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실패에는 대한항공 2대 주주(11.70%)인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격론을 벌인 끝에 26일 밤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연임 반대 이유를 밝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새로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 원칙)에 따라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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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의 힘도 컸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상훈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 등은 조 회장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140여명의 주주로부터 전체 주식 수의 0.54%(51만5907주)의 위임장을 받았다. 이들은 “우리나라 소액주주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주주의 참여를 이끌어 낸 사례로,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주주들의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전체 지분의 24.76%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도 조 회장의 경영 배제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자본시장의 틀 안에서 재벌 총수 중심의 후진적 경영 행태와 이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 등 ‘오너 리스크’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재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 외국인 주주들의 합심으로 재벌 총수도 경영을 잘하지 못할 경우 경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역사적인 사건”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조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주총 결의에 사실상 불복 의사를 밝힌 것은 법적·도덕적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주총 이후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했을 뿐 경영권을 박탈당한 게 아니다”라며 “미등기 임원이라도 경영을 할 수 있고, 한진칼 대표이사로서도 경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민정 최하얀 곽정수 홍대선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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