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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조양호쪽 “미등기 회장으로 경영 계속” 안하무인 반발

등록 2019-03-27 22:21수정 2019-03-28 09:58

대한항공 주총 직후
“미등기임원 회장으로
계속 경영할 수 있다” 발표

장남 조원태 사장 앞세워
‘총수 중심’ 이사회 가능

경제개혁연대 “주총 결론 받아들여
주주 친화 정책 노력해야”
거부땐 내년 또 ‘표 대결’ 전망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결정된 사내이사 연임의 건 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결정된 사내이사 연임의 건 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됨에 따라, 대한항공은 지난 20년 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조 회장은 1999년 부친 고 조중훈 회장으로부터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받은 뒤 줄곧 경영 일선에 있었다. 그사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항공 이사회가 경영진 감시·견제라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이전보다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할 권한과 실력을 갖추게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대한항공 소수주주들은 조 회장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침해했으며, 따라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주총 직후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라며 “조 회장이 미등기임원 회장으로서 계속 경영을 할 수 있고, 한진칼 대표이사로서도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냈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분을 29.96% 가진 한진그룹 지주회사이며,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들은 한진칼 지분 28.93%를 보유하고 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현재 이사회 구성도 조 회장이 ‘황제 경영’을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내이사 4명 가운데 조 회장은 이날 주총으로 옷을 벗게 됐지만,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과 우기홍 대표이사(여객사업본부장), 이수근 부사장(정비본부장) 등 기존 사내이사 3명은 계속 활동하게 된다. 조 회장의 측근으로 평가되는 사외이사 5명도 굳건하다. 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임채민 광장 고문, 정진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등이 조 회장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광장은 조 회장의 매형인 이태희 전 서울지법 판사가 설립한 법무법인이다.

조 회장이 장남 조원태 사장을 앞세워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총수 중심’의 이사회 운영을 종용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조 사장은 통상적인 경영권 ‘승계’가 아닌 주주들의 ‘비토’(거부)로 경영 전면에 서게 됐다. 조 사장은 2003년 8월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 차장으로 그룹에 합류했으며, 대한항공 경영기획팀 부팀장, 여객사업본부 본부장(상무), 경영전략본부장(전무), 화물사업본부장(부사장), 총괄부사장 등을 거쳐 2017년 1월 사장에 올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조 사장의 경영 능력이 아직 입증되지 않은데다, 지난해 불거진 인하대 부정 편입 사건 등 오너 3세 ‘리스크’가 적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 회장이 이처럼 자신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활용해 계속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주주 요구를 정면으로 위배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사진도 이사회 운영 방식을 바꾸고 주주친화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내년 3월 주총에서 또다시 ‘표 대결’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내년 3월에는 우기홍·이수근 사내이사와 안용석·정진수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난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대한항공 이사회는 주주총회의 결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사회 시스템을 개혁해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조 회장의 안하무인격 태도는 시장질서 체계 아래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조 회장은 여전히 한진그룹의 총수이고 그 영향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대한항공 경영에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는 회사와 주주가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주식시장은 대한항공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오너 리스크’가 실존했음을 증명했다. 대한항공 주식은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 안건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상승률이 5%를 웃돌았고, 전 거래일보다 2.47% 오른 3만3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또 조 회장이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이끌지 않더라도 대한항공 경영 환경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한항공 영업이익은 전년에 견줘 27.6% 줄어 6924억원에 머물렀지만, 이는 급격한 유가 상승 영향이 컸다. 항공업 특성상 국제유가나 국제정세 등 외부 변수에 큰 영향을 받지만, 항공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중·단기 노선 중심의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 등과 비교적 경쟁이 덜한 장거리 노선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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