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연매출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이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큰 충격에 빠져든 모습이다. 17일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대해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짤막한 입장만 내놨다. 밤새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렸던 삼성그룹 관계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착잡한 심정을 나타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수감 이후 그룹 경영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미래전략실과 사장단 협의체가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2008년 비자금 사건 때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사장단 협의체 방식으로 그룹 경영을 꾸린 바 있다. 미래전략실은 이 부회장이 해체를 약속했지만 한동안 그룹 구심점 역할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삼성그룹 쪽은 “어떤 논의나 전달 사항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우려 섞인 입장을 내놨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대표기업이 경영공백 상황을 맞게 된 데 대해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11.7%, 영업이익의 30%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다. 삼성의 경영 공백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와 국제신인도 하락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주식시장은 크게 출렁이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0.42%(8000원) 떨어진 189만3000원을 기록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주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도 “이 부회장의 공백이 기존 사업과 기술 개발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국외 기업을 인수합병 하는 데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진의 뇌물죄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국외 인수합병 과정에서 혁신적인 젊은 기업의 인재를 영입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삼성그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총수를 중심으로 한 미래전략실의 계열사 통제를 계열사별 독립 경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대기업 집단의 ‘컨트롤타워’ 존재를 인정하되 최종적인 책임은 계열사별 이사회가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계열사들이 있는데 이를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없을 순 없다. 대신 이사회에 외부 주주가 추천한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들어가서 총수일가가 사익을 추구하거나 잘못된 경영을 하는 것을 막는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과 한화 등 재벌 기업에서 일한 바 있는 주진형 한화증권 전 대표는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이 구속된 뒤 임원들이 찾아가 다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왔다. 총수의 개입 폭은 이전보다 줄겠지만 누가 역할을 하는지 봐야 한다. 미전실 해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개별 계열사에 의사결정 권한을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삼성의 성장사를 다룬 <삼성웨이>를 쓴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국민은 미래전략실이 기업의 미래가 아닌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에만 골몰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러나 그룹의 컨트롤타워는 기업의 문화를 만들고 내부 기강을 잡는 역할과 계열사 간 시너지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능을 할 곳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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