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감산에 동참해도 업황 조기 회복을 확신할 순 없다.”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한 뒤 올해 하반기 반도체 업황 회복을 묻는 질문에 12일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말이다. 생산량을 줄여도 세계 경기 둔화로 수요 부진이 계속되면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수출 부문에서 빨간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수출 부진과 무역적자 탈출은 쉽지 않다.
삼성전자의 1분기(1~3월) 잠정 실적 발표 외에도 최근에는 반도체 업황 부진의 골을 가늠케 하는 지표들이 잇달아 쏟아졌다.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는 지난 11일(현지시각) 4년 만에 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감소한 3월 실적을 내놨다. 지난달 매출은 1454억1천만대만달러(약 6조3천억원)로 2022년 3월보다 15.4% 줄었다. 시장 분석가들은 이 회사의 주요 고객사인 미국 애플의 컴퓨터 ‘맥’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실제 하루 앞선 지난 10일 시장조사업체 아이디시(IDC)는 애플의 1~3월 개인용 컴퓨터(PC) 출하량이 전년 동기에 견줘 40.5% 급감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 업체는 글로벌 피시 출하량도 같은 기간 29% 감소했다고 추산했다.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여가는 반도체는 늘고 있다. 산업연구원 산업통계분석시스템을 보면, 국내 업체의 반도체 재고지수는 지난 2월 기준 210.2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가전제품과 아이티(IT) 제품 등이 많이 팔리며 반도체 수요가 높았던 2021년 6월(77)에 견주면 3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지난 2월 기준 78.2로, 2021년 6월 127.6에 견줘 크게 하락한 반도체 생산지수도 반도체 업계가 재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찌감치 생산량 감축에 들어간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도체 재고·생산지수는 매달 재고·생산량을 2015년(100)을 기준으로 그 증감을 비교할 수 있게 정리한 지수다.
반도체 업체들의 감산이 업황 개선을 조기에 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 경제가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둔화된 뒤 이전만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의 전략 갈등 속에 중국이 핵심 공급망에 대한 자체 조달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봐야한다.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중국의 반도체 제조용 장비 국산화율은 2021년 21%에서 2022년 32%로 상승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기금을 분야별로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의 주력 분야인 메모리 및 파운드리에 67%가 집중돼있다. 구조적인 대중 반도체 수출 감소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다만 전 세계 인공지능(AI) 서비스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는게 업황 회복을 앞당기는 호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는 4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올림픽 사이클 산업’이란 분석도 있지만, 2000년 들어서 노트북 수요가 증가하거나 2010년대 초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변수가 있을 때 불규칙한 호황을 누린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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