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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피해 당사자가 안 받겠다는데”…포스코 ‘강제징용 배상금’ 논란

등록 2023-03-16 16:20수정 2023-03-17 02:48

피해 당사자 제3자 변제 거부했는데
포스코, 정부 발표 맞춰 배상금 40억 기부
“일본 대신 배상? 사회적 책임 부합 의문”
포스코 “유사재단 우려 사라져 기부 결정”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모습. 연합뉴스

포스코가 ‘남은 약속 이행’을 명분으로 한·일 경제협력기금을 받은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40억원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금으로 내놓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정부 입맛에만 맞춘 부적절한 의사결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16일 논평을 내어 “포스코의 기부금 출연이 과연 회사가 부담하는 사회적 책임이나 공익에 충분히 부합하는 의사결정인지 의문”이라며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 3명이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피해자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부 뜻에 따라 재원을 부담했다면 결코 사회적 책임을 온당하게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6일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직접 배상하지 않고 한국 정부 산하 지원재단이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제시했다. 배상금은 국내 기업 등 민간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자발적으로 기부한 돈으로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미쓰비시 등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는 물론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사과도 빠져 있어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포스코는 지난 15일 “정부의 발표 취지에 맞게 자발적으로 (40억원을)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인천지역 진보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지난 15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공원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정부 해법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지역 진보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지난 15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공원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정부 해법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 이사회와 경영진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는 자발적 기금 출연이라고 강조하지만, 출연 시기나 경위를 고려하면 정부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결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이번 기부금 출연 근거로 ‘2012년 지원재단과의 맺은 100억원 출연 약정’을 언급한 점을 두고도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스코 이사회는 2012년 3월 지원재단에 100억원을 출연하기로 결정했고,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30억원씩을 내놨다. 포스코는 이번에 40억원을 추가로 출연하면서 “재단과의 약속을 모두 이행하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약속과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제3자 변제는 무관하다고 짚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 방식에 따라 배상을 받는 피해자는, 미쓰비시중공업·신일본제철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2012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낸 피해자로 제한되지만, 과거 포스코는 ‘전체’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 기부금을 내놓겠다고 설명해서다. 경제개혁연대는 “2012년 포스코가 기부금을 출연하겠다고 약속했을 때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다고 밝힌 보도가 있었다”며 “제3자 변제를 위해 40억원을 출연한다는 설명은 당초 기부금 약정 취지나 포스코의 입장과는 배치된다”고 적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 감사위원회가 이번 기부금 출연의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봐 달라고 주문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가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사실상 대신 부담하는 것이 과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에 관한 회사의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포스코 감사위원회가 의사결정 과정과 사회적 책임과 기업가치 부합 여부 등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포스코 감사위원회는 박재환 위원장(중앙대 교수), 이민호 위원(율촌 ESG 연구소장), 이시우 위원(포스코 사내이사 부사장)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해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이라는 대승적, 도의적 차원에서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며 “당시 지원 대상을 특정하지 않기로 한 것은 나머지 40억원 기부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용처는 지원재단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2017년 이후 나머지 40억원을 집행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당시 지원재단과 다른 유사재단이 설립된다는 논의가 있어 기부금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정부 발표로 추가 재단 설립에 대한 우려가 해소돼 약정 사항을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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