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성하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 방안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긴급 항의행동을 열어 ‘반인권∙반헌법∙반역사적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을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 재원을 국내 기업의 ‘자발적 기부’로 조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관련 기업들은 ‘알아서 따르는’ 분위기다. 기업 쪽과 사전 조율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정부안을 기업들이 떠밀리듯 뒷수습하는 모양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배상금 재원을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일본의 경제협력자금을 받은 기업들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다만 강제동원 피해 배상금 업무를 담당하게 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기업에 기부금 출연을 요청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기부금 참여에 대해 “공식 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포스코는 2012년 이 재단에 100억원 출연을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60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40억원 지원은 보류해왔다. 포스코의 전신인 옛 포항종합제철은 일본 경협자금 5억달러 중 1억1948만달러를 받았다. 케이티앤지(KT&G)는 “회사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으며, 사회적 합의 이행 과정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외환은행 합병) 관계자는 “기부금 출연에 대해 공식 요청을 받게 된다면 어떤 방식과 형태로 할지 법률적 검토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협자금 수혜 기업 기준이 아리송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청구권 협정 수혜라는 게 한강철교 복구 등 건설사업이다. 철도 건설사업은 코레일이 아니라 국가철도공단이 담당하고 우리는 운영사다. 우리가 부담하는 건지 철도공단이 분담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당시 지원받은 경협자금은 상환을 다 마친 걸로 알고 있다. 기부금 출연 방식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재계의 교류 사업은 이번 정부 공식 발표에서 빠졌다. 앞서 일본 언론들은 “전경련이 게이단렌에 청년사업을 제안했다”는 보도를 내놨다. 두 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의 게이단렌(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기금을 조성해 청소년 장학금 사업을 벌이는 방안들이 거론된 바 있다. 게이단렌에는 징용 배상 소송의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도 회원사로 가입돼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와 두 단체가 사전에 추진 사업을 논의하거나 조율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로선 확인해 줄수 있는 사실이 없다. 두 나라 정부 발표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회승 선임기자, 경제산업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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