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한 뒤 나와 승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버지 고 이건희 회장 뒤를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2014년 아버지가 지병으로 쓰러진 뒤로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해온 데 이어 회장 지위까지 물려받았다.
이재용 회장은 27일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 의결로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31년 만에 최고 지위인 회장에 올랐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정점에 올랐지만, 아직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2000년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지원을 받아가며 이른바 ‘이(e)삼성’ 사업을 펼쳤다. 이삼성과 이삼성인터내셔널, 시큐아이닷컴, 가치네트 등의 설립에 참여해 지분을 대량 보유했다. 하지만 벤처 열풍이 식으면서 실적이 부진해지자 보유 지분을 삼성 계열사에 매각했다. 경영 실패 손실을 삼성 계열사에 넘긴 것이다.
이 회장은 2014년부터 사실상 삼성그룹 경영권을 행사했다. 2018년 ‘180조 투자, 4만명 채용’,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등을 발표했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이미지센서에서는 지난 1분기 기준 시장점유율이 29%로 소니(45%)와 격차를 줄였지만, 다른 분야에선 내세울 만한 성적표가 아직 없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회장의 경영능력은 검증된 바 없어 시장에선 불안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삼성물산 합병 이후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일을 하다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경영능력을 앞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박근혜·최순실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2017년 2월 첫 구속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며 뇌물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가 2021년 1월 재구속됐고, 7개월 만인 같은 해 8월 가석방됐다. 그리고 올해 8월 특별사면·복권을 받아 취업제한 조처에서 풀렸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쓴 ‘재벌의 정경유착’ 이미지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 회장이 쌓은 재산 상당액은 편법으로 이뤄졌다.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61억원을 활용해 1996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전환사채, 1997년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했다. 이후 삼성에스디에스가 상장되고,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 합병한 뒤 삼성물산과 재합병하면서 이 회장은 수조원의 차익을 거뒀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2021년 6월말 기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물산·생명·에스디에스·엔지니어링·화재 등 6개 계열사의 지분 가치는 15조5613억원이다. 이 가운데 10조5836억원(68.01%)은 직접 취득이나 상속이 아닌 일감 몰아주기, 회사 기회 유용 등 편법으로 늘어난 가치로 추산됐다.
이 회장에겐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30% 넘게 줄었고 4분기 실적은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향후 5년 동안 450조원(국내 360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는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지만,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같은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2020년 5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약속한 ‘4세 경영 포기’ 등도 완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지도록 지배구조와 경영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현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서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만들고 있다. 이창민 교수는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면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계획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이에 대해 아직 아무런 언급조차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삼성 특혜’란 평가를 받아온,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가치 평가 기준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취득 원가로 따져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이 문제가 안되지만, 야당이 추진 중인 현재 가치로 바뀐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상당 부분을 팔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지게 된다. 이 회장이 약속한 “노동 3권 보장”도 최근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판매사가 노조원의 개인 성향과 가족관계 등을 파악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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