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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스마트폰 보급엔 잰걸음…‘디지털 부작용’ 대책 더딘 걸음

등록 2014-01-29 18:29수정 2014-02-02 17:00

[보급률 못 따라가는 정부 정책]

‘통신수단’ 넘어선 디지털 산업
사회영향력 큰데도 정책은 제각각
주무부처 미래부는 보급 위주 치중
‘중독’ 이슈는 유관부처별 대응 미흡
‘사후약방문’보단 장기대책 있어야
전화기 한대 값이 집 한채 값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로 통신 수요가 급증했지만 1980년대 초까지 통신 기반구조는 낙후한 상황이었다. 이런 불균형은 1970년대 심각한 전화 품귀현상을 불러왔다. 개인들이 임의로 거래할 수 있는 이른바 ‘백색전화’는 한때 26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당시 서울 시내 50평짜리 집값(230만원)을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올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은 80%에 이를 전망이다(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지난해 이미 국민 10명 가운데 7명(67.6%)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 ‘보급률 세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불과 30여년 사이에 한국은 정보통신 인프라 보급 분야에서 선도적 국가로 발돋움한 셈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 아래 보급 확대에 중점을 둔 정책이 거둔 성과다. 그동안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연결망의 빠른 보급은 ‘정보통신(IT) 강국 코리아’라는 명성을 안겨준 듯했다.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적인 개인 미디어 기기의 등장과 더불어 공급자 위주의 정책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 전화가 개인간 통신수단으로 여겨지며 일상에서 부분적 요소를 차지해온 여건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 미디어는 정보의 습득과 의견 형성, 업무, 각종 상거래, 공동체적 교류 등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만능 도구’가 됐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되어온 아동·청소년 세대에 미칠 영향을 비롯해 산업 외적인 문제에 대한 예방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팔고 보자” 기업 전략 김대진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의 빠른 스마트폰의 확산이 수요자의 필요가 아니라, 기업들의 마케팅에 따른 현상으로 본다. 이는 미래에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경고다. 김 교수는 “기업들은 빠른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생산한다. 첫째, 아기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둘째, 반응이 빠를 것, 셋째, 쾌락을 줄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과거 어떤 미디어도 보여주지 못한 엄청난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에 따른 중독 위험에 대한 연구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위험성에 대한 사전 검토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의 접근은 더딘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무를 맡고 있다. 미래부는 육성을 중심으로 한 산업 논리에 치우친 실정이다. 민간기업들은 그동안 보급 우선 정책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빠르게 성장했다. 공기업으로 출발해 2002년 완전 민영화된 케이티(KT)를 비롯해 에스케이텔레콤(SKT), 엘지유플러스(LGU+) 등 이동통신 3사는 과점 체제를 구축해 통신 정책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 아이티(IT)산업의 멸망>을 쓴 김인성(49) 한양대 교수(컴퓨터공학)는 “우리나라 정보통신 정책은 통신사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의 주요 구성원도 과거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이 많다”고 말했다.

미래부가 산업 육성과 규제를 모두 쥐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둘이 혼재되어 있다 보니 필요한 규제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도 산업 육성 논리에 따라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외의 경우 산업 육성에 치우친 나라라 하더라도 규제는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독립된 기구가 엄격하게 집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나 캐나다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이 그런 사례다.

정부 정책, 부처 이해에 따라 혼선 막대한 액수의 정부기금인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운용 방식도 정부의 산업육성 중심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지난해 8월 정부는 엘티이(LTE) 황금주파수를 이동통신 3사 경매에 부쳤다. 2조4289억원에 이르는 이 경매의 전체 낙찰가는 정보통신진흥기금으로 운용된다.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공공재인 주파수의) 판매금은 스마트 미디어의 이용 교육 등 해당 이용자들의 복지에도 배분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해당 기금은 거꾸로 정보통신 연구개발 등 사업자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에만 쓰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 복지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콘텐츠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범부처간 논의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 정책을 보면 부처 이해관계에 따라 혼선을 빚는 일이 잦다. 대표적인 문제가 게임 중독에 대한 접근이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청소년의 새벽시간 게임 사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를 비롯한 강력한 규제를 강조한다. 반면 문화부에서는 게임업계에 대한 규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 안에서도 이를 부정적 의미의 말인 ‘중독’으로 쓸지 보다 긍정적인 뜻을 담은‘과몰입’으로 쓸지 용어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대두된 필요성에 따라 지난해 6월 미래부·교육부·문화부 등 8개 부처 합동으로 ‘제2차 인터넷 중독 예방 및 해소 종합계획안’을 내놓은 바 있다. 기존의 인터넷 중심의 예방 정책을 스마트폰으로 확대하고 청소년 중심에서 유아와 성인까지로 범위를 넓힌 대응책이다. 하지만 이후 정부간 협업은 미진해 실행이 계획을 못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이후 대응은 부처별로 중독 문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정도에 그쳤다. 큰 이유는 책임질 상부의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체 밑그림 없이 육성 정책이 앞서 가고, 대책은 개별 문제에 대한 치료 위주로 뒤따라가는 시스템의 문제도 지적된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유럽 등 외국 사례를 보면 미디어 발전 단계에 따른 각 사회 주체들에 미칠 영향을 조사·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가 잡혀 있다. 우리나라는 부작용에 집중하는 경향이 큰데, 새 미디어 기술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사전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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