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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거대한 ‘부의 세습’ 속도, 소득 증가보다 3배나 빠르다

등록 2023-12-11 11:48수정 2023-12-12 23:20

전체 상속의 2.6%만 세금 부과
부의 대물림 속도와 규모 가속
증여 포함 상속 GDP의 약 7%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 전경. 부의 세습 규모가 커지면서 부의 불평등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 전경. 부의 세습 규모가 커지면서 부의 불평등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상속세 말만으로 어마무시한 세금으로 악명이 높습니다…자칫 잘못하면 절세는커녕 자산의 절반 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에 본사, 지방 여러 곳에 지사를 둔 한 세무법인이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세금 내고 난 뒤 손에 쥐는 유산이 얼마 안 될 수 있다는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이자 과장 광고라 할 수 있다.

고인이 남긴 상속에 매기는 최고 세율이 50%니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로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주는 재산에 붙는 상속세는 소수의 부자가 내는 ‘부자세’라 할 수 있다. 다수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며 유산을 물려준다.

■ 상속세는 최상위 소수 부자의 세금

10일 한겨레가 지난 10년 치(2012~2021년)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했더니 전체 상속 가운데 상속세가 매겨지는 건수는 연평균 2.6%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매년 1000건의 상속이 이뤄질 때 과세는 26건에 그쳤다는 말이다. 그러니 ‘소수’가 내는 세금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974건에 세금을 매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21년 전체 피상속인(재산을 남긴 고인) 34만4184명 가운데 과세 대상은 1만2749명이다. 나머지 33만1435명은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그러니 ‘상속세는 더는 부자만 내는 세금이 아니다’라는 흔한 광고 문구도 과장이다.

그나마 한 푼이라도 세금을 내는 피상속인이 10년 전에 견줘 두 배로 늘었는데 이는 사망률 증가에 따른 전체 피상속인의 증가와 과세 기준은 동일한 데 반해 자산의 가치는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해에는 과세 대상 피상속인이 전체의 4.5%로 늘었다.

세금을 내는 소수의 피상속인 가운데서도 극소수가 대부분의 상속세를 내는 구조다. 분위별 통계를 낸 지난 4년(2018~2021년) 상속세 납부자 가운데 상위 10%(전체 피상속인 중 평균 0.26%)가 전체 상속세(결정세액 기준)의 평균 75%를 냈다. 즉 매년 1천 건의 상속이 이뤄진다고 할 때 2~3명이 상속세 대부분을 낸다는 얘기다. 달리 말하면 극소수의 이들이 대규모 상속을 하고 그 가운데 일부로 내는 세금이 한 해 상속세 세수의 팔할에 이른다.

최근 전체 상속에서 최상위 부자의 몫이 커지면서 이들이 내는 세금의 몫도 덩달아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26조 원이 넘는 상속 효과 등으로 상속세 납부자 가운데 상위 10%(1576명)가 내는 상속세 비중이 전체의 92.3%로 늘었다. 이들은 ‘슈퍼 부자’라 할 수 있다.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건 분명하다. 상속을 거쳐 부가 소수에게 더욱 집중되는 현실이다.

2021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당 평균 상속액은 1억6300만원인데 반해 과세 대상자는 그보다 15배가 많은 24억원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세금이 매겨진 피상속인의 평균 상속액이 약 40억 원이다.

■ 상속 통한 거대한 부의 무상 이전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거대한 부의 세습이다. 우리나라에서 갈수록 부의 이전 규모가 커지고 있다. 자산 가치의 상승과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과 맞물려 있지만 소득의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국민소득(이하 명목 GDP) 대비 전체 상속가액 비중을 계산해봤더니 2002년 1.63%였던 게 2012년 1.84%에서 2021년 2.71%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4.47%로 뛰었다.

부의 또 다른 이전 방식인 증여를 함께 보면 보다 정확한 부의 세습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상속이 사후 부의 무상 이전이라면 증여는 사전 이전이다. 국민소득 대비 증여를 포함한 상속의 합계(일부 중복)가 2002년 2.16%에서 2012년 2.74%, 2021년 5.31%로 증가했다. 지난 20년 사이 그 비중이 두 배나 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 그 증가 폭이 가팔라졌다. 지난해만 따로 떼서 보면 그 비중은 6.52%에 이른다. 지난해 상속과 증여 재산가액을 다 더하면 140조 원에 이른다. 이마저도 국세청에 신고한 상속 및 증여를 바탕으로 계산한 값으로 신고하지 않은 재산을 고려하면 실제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경제 주체들이 지난 21년 동안(2002~2022년) 열심히 일해 국민소득 규모가 2.7배 커졌다. 그런데 상속과 증여를 통한 부의 무상 이전 규모는 같은 기간 8.3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로 표현하면 부의 세습이 소득보다 3배나 빠른 셈이다.

소득보다 상속액이 훨씬 빠르게 증가하면서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이는 부의 축적에 저축보다 상속의 기여도와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위험한 신호’다. 순저축률은 꼭짓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탄 지 오래다. 재산 형성에 어느 집에서 태어났는지가 더 결정적 요인이 되는 현실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경고한 ‘세습 자본주의’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는 상속보다 생전에 부를 이전하는 증여가 훨씬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잣집 자녀들이 부를 증식할 기회를 부모 세대로부터 좀 더 일찍 얻고 있다는 의미다.

■ 부의 축적에 상속의 비중 점점 커져

부의 축적에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지난 2015년 발표한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4’ 제목의 논문에서 “부의 축적에서 상속(증여 포함)이 기여한 비중은 1970년대 37%에서 1980~90년대 27~29%로 떨어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 42%로 빠르게 상승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 바닥을 찍은 뒤 부의 축적에 상속과 증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낮은 경제 성장률과 저축률이 높은 사망률과 어우러져 상속이 부의 축적에 차지하는 비중의 상승 추세를 더 가속할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부의 축적에 증여를 포함한 상속의 기여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레 부의 불평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전되는 부에서 최상층 부자의 몫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부의 집중이 심각한 상태다. 세계 불평등데이터베이스는 2021년 우리나라의 부채를 뺀 개인 순 자산(부, 재산) 가운데 상위 1%의 몫이 전체의 25.7%에 이른다고 밝혔다. 상위 10%로 확대하면 그 비중은 59.3%에 이른다. 선진국 가운데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 미국은 2019년 기준 순 자산 상위 1%가 전체의 35.3%, 상위 10%가 전체의 71.5%를 차지하고 있다.

■ 다양한 세법 개편안 목적지는 감세

그런데 상속세 최고 세율 인하나 공제 확대, 상속세 부과 방식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재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끊이질 않고 있다. 방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감세’란 목적지는 동일하다. 한 마디로 세금은 더 적게 떼고 더 많은 부가 자녀 세대에게 매끄럽게 상속될 수 있도록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세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그 대열의 맨 앞에 서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유산 취득세로의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지금처럼 피상속인이 남긴 유산에 세금을 매기는 게 아니라 상속인이 각각 물려받은 유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상속세는 가액이 클수록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 체계여서, 세율과 과표 구간을 그대로 둔 채 유산 취득세로 개편하면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안은 ‘상속세 감세안’이라 할 수 있다. 세율 인하나 공제 한도 확대 및 조건 완화도 결과는 같다.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가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의 각종 감세 조처로 세수 확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현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 본격적인 세법 개정안을 담지 못했지만 임기 내 언제든 재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올해 부자들에게 별 논란과 잡음 없이 ’작은 선물’이 주어졌다. 지난달 30일 혼인이나 출산 뒤 2년 내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으면 부부합산 3억원의 증여세 면제(공제), 가업 승계 시 증여세 최저세율(10%) 적용 과세 구간의 상향(60억 원에서 120억 원 이하로), 가업 승계 시 증여세 연부연납(분할 납부) 기간을 5년에서 15년으로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이 국회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부자들이 대부분의 세금을 내는 탓에 감세의 혜택 또한 부자들에게 집중된다. 앞서 살펴봤듯이 상속세는 전체 피상속인 가운데 2~3% 부자에게 해당하고 이들 가운데서도 소수가 대부분의 상속세를 내기 때문이다. 상속세 감세는 이들의 세후 부의 증가와 부의 집중 강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현 정부의 계획대로 유산 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가 개편된다면 2021년 기준 상위 0.8%에게 감세 혜택의 80%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7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밝힌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다. 총 세수도 최소 6천 억 원에서 최대 1조3천 억원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속세는 분명 인기 없는 세금이다. 부정적 뉘앙스를 담아 ’사망세’로 부르는 나라도 있다. 상속세 공포가 잘 통하는 까닭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상속가액에 대한 상속자들의 기대치는 실제보다 크고 상속세는 실제보다 더 낸다는 착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탓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우체국에 도착한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올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공시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우체국에 도착한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올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공시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 연합뉴스

세 부담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이는 ’실효세율’(명목 세율이 아닌 실제 상속액 대비 과세 비중)도 논란거리다. 세 부담을 낮추려는 쪽은 높은 실효세율 수치를, 반대쪽은 낮은 수치를 자주 인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자의 경우에는 실효세율에 비춰 이미 세 부담이 크니 세율을 더 낮추자고 주장한다.

수치를 계산해보면 지난 10년간 과세 미달을 포함한 ’총상속 재산가액’ 대비 세금(총결정세액 기준)의 비중은 평균 6.5%다. 거칠게 말해 모든 사람이 1000원을 상속받았는데 그 가운데 세금으로 떼인 돈이 65원이라는 말이다. 반면에 실제 세금을 낸 피상속인의 총상속 재산가액 대비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4.7%로 높아진다. 과세 대상 피상속인의 총상속 재산가액에서 채무와 비과세 재산 등을 뺀 ’상속세 과세가액’ 대비 세금의 비중은 지난 10년 평균 15%,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초공제 등을 뺀 뒤 세율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29.2%가 된다.

2021년 기준 상속세 납부자 가운데 가장 많은 피상속인(5545명)이 분포한 상속 재산 10억~20억 원 구간의 평균 상속세 부담액은 1인당 평균 7500만원이다. 이들의 평균 상속액 14억3천만 원의 약 5.2%다. 고인의 채무 등을 제한 상속세 과세가액이나 과세표준으로 하면 그 수치는 훨씬 높아진다.

■ 상속세는 세습 자본주의 막는 빗장

지금의 상속세 과세 체계가 불변은 아니다. 상속 및 증여세의 법정 최고세율은 70~80년대 한때 70% 안팎에서 이후 점차 낮아졌다가 90년대 중반 저점을 찍은 뒤 다시 소폭 상승해 현재(50%)에 이르고 있다. 총조세와 국민소득 대비 두 세금의 비중은 90년대 초중반 정점을 찍고 감소해왔다가 다시 상승 추세에 있다.

지금껏 세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주로 세 부담 경감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제부터라도 부의 집중과 불평등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거대한 부의 이전이 이뤄지고 있는 이때 자칫 세율을 크게 낮추거나 공제를 대폭 늘리는 등 조세 체계를 함부로 손댔다가 부의 집중과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증여를 포함한 상속에 매기는 세금은 세습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막는 빗장과 같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김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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