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 짜리 지폐가 쌓여 있는 모습. 2009년 11월 촬영. 로이터 연합뉴스
전세계 억만장자들이 여전히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회사를 이용해 엄청난 탈세를 하고 있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지난해 부자 나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자는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유럽연합(EU) 조세관측연구소는 23일 ‘2024년 글로벌 세금탈루 보고서’를 내어 이렇게 밝히고 “최상위 부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소득이 아니라 자산에 2%의 최저 세율을 적용해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전세계 최상위 부자 2700명이 소유한 부가 거의 13조달러(1경7470조원)에 이르지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소득세 실효세율은 전체 부의 0%~0.6%에 불과하다고 사정했다. 미국에서는 0.5% 수준이며,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0%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실효 세율이 터무니없이 낮은 이유는 이들이 주식 배당금 등 다양한 소득을 이름뿐인 지주회사로 이전해 과세를 피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세법망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들 지주회사는 절세와 탈세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이런 세금 탈루를 막을 수 있다면 이들 ‘슈퍼 리치’에 대한 실효세율은 20%~25%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또 이들의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이들이 보유한 자산 13조달러에 대한 최저세율 2%를 적용해 과세하면 해마다 2500억 달러(335조원)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부자들에 대한 과세가 효과를 거두려면 국제적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내년 11월 브라질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재산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일정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018년 금융기관 계좌 정보의 자동 공유 시스템 출범 이후 부자들이 국외 조세 회피처로 옮기는 자산은 3분의 1 남짓 줄어들었다. 2021년엔 140개 나라가 다국적 거대 기업의 법인세 최저세율을 15%로 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 조세관측연구소 책임자인 가브리엘 주크만은 “다국적기업에 대한 최저 세율 적용의 논리적 다음 단계는 억만장자 개인에게도 최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날 ‘2023년 국제이민 전망’ 보고서를 내어, 지난해 국경을 넘어 38개 회원국으로 이주한 사람이 610만명이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한 해 전인 2021년보다 26% 늘어난 것이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확산 전인 2019년보다 14% 많은 것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배경에는 오이시디 회원국의 노동력 부족 현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오이시디 회원국 대부분이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악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현재 인구 추세에 비춰 앞으로 25년 동안 유럽연합(EU)에 적어도 5천만명의 노동력 유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