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금본위제를 통해 교역량을 증대
금융시장의 최근 관심사는 환율이다. 투자자들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전할지 우려하고 있다. 환율분쟁이 커질수록 금본위제에 대한 향수가 깊어진다. 전혀 불가능한 주장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정책 강령에 금본위제 회귀를 포함했다. 공화당이 2016년 정책 강령에 실은 금본위제 회귀 주장을 행정부가 이어 받은 결과다. 공화당이 금본위제 회귀를 주장하는 이유는 달러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공화당은 강 달러 시절 향수를 느끼는 듯하다. 달러화 지수 장기 추세선은 미국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국가 부채 증가로 하락 중이다. 달러 약세가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과도하면 기축통화 지위가 위태로워진다.
금본위제는 각국 통화가치를 금 무게 기준으로 고정시켜 놓은 통화 시스템이다. 각국은 법률로 자국 통화와 금 가격을 설정하고 유지했다. 파운드화와 프랑화도 금의 특정 중량 사이에 고정적 관계가 존재했다. 각국은 보유 금 총량에 따라 통화 공급량을 결정했다. 통화 공급량은 물가 수준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줬다.
세계는 금본위제 도입으로 얻는 효용이 컸다. 무엇보다 교역량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금본위제 하에서 환율 변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달러화 가치는 1900년 금 1온스당 대략 20달러였다. 영국은 당시 금 1온스당 4파운드로 금 태환 비율을 정했다. 결국 20달러와 4파운드가 같다는 뜻이므로 교환 비율은 1파운드 당 4달러다. 금본위제를 도입한 나라 간 환율은 기본적으로 고정이다. 교역이 아무리 늘어도 지금과 달리 각국 통화 상대 가격은 변하지 않았다. 각국은 무역 적자에 따른 금 유출 시 금리를 올려 시중 화폐량과 환율을 조절했다. 세계는 금본위제를 통해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고 금본위제 수호를 위해 협조했다.
금본위제가 가진 심각한 단점은 디플레이션
금본위제는 여러 장점에도 완벽한 통화 시스템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단점은 디플레이션을 필연적으로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밀턴 프리드먼 등 통화 경제학자들은 금본위제가 이전 복본위제에 비해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세계 교역량과 부 증가 속도를 금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도매 물가는 1873년과 1896년 사이 18.3% 하락했다. 물가는 1886년 은화를 퇴출한 후 추가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은화 주조를 계속했다면 통화량이 늘어 심각한 디플레이션은 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금본위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디플레이션 원인을 금본위제에서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플레이션의 심각한 피해자인 농민 등 민중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봉기했다.
미국과 유럽 등 국가들은 디플레이션에도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나라가 동시에 금본위제를 탈퇴하지 않는 한 어느 한 국가가 금본위제 탈퇴로 얻을 수 있는 효익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극심한 환율 변동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금본위제 하에서 개별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옳은 선택은 금본위제 수호였다. 금본위제 균열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나타났다.
유럽은 세계대전 이후 복구를 위해 미국에 막대한 채무를 졌다. 유럽 국가들은 금본위제 일시 포기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채무를 갚았다. 승전국 영국과 패전국 독일 모두 국제 수지 균형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자본 수입에 의존했다. 유럽 국가들은 환율 안정을 위해 1920년대 후반 금본위제를 부활시켰으나 곧 와해했다. 각국은 농민과 노동자 지위 향상으로 물가 안정과 고용 촉진 요구를 간과할 수 없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금본위제가 유발할 디플레이션 고통을 다시 겪기 거부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순채권국이 되면서 기축통화국 지위를 갖췄다. 미국에서 시작한 대공황은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줬지만 유럽에 더 큰 타격을 가했다. 금본위제 종주국 영국은 보유 금 부족으로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기 이르렀다.
황금으로 만든 족쇄
대공황은 금본위제 붕괴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 금본위제는 금 보유량으로 통화 공급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경제 안정화를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금본위제 하에서 금리 움직임은 현재와 다르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경제 활동이 왕성할 때 통화 공급량이 더 증가하고 금리가 하락한다. 현대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통화정책 방향과 반대다. 통화 공급량은 금본위제 하에서 금에 연계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 시 금리를 낮춰 통화량 확대를 유도하는 신축적 통화정책 구사가 불가능하다. 통화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은 통화정책 구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금본위제를 족쇄에 비유했다.
금본위제는 국제 무역을 통해 흑자를 낼수록 경기 과열이 나타나고 적자 시 경기 침체가 더 커졌다. 금본위제 장점인 물가 안정은 장기 관점에서 옳으나 단기에서 변동성이 컸다. 통화정책 구사를 어렵게 만드는 단점은 대공황을 통해 두드러졌다.
미국은 1929년 시작한 대공황기에서 금본위제를 유지했다. 현대 관점에서 통화정책 긴축과 같은 의미다. Fed(미국중앙은행)는 1930년대 초 청산 이론을 지지했다. 청산 이론은 대공황 이전 경제 성장과 주가 상승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침체를 통해 과잉을 짜내야 한다는 이론이다. 미국 경제는 금본위제 유지와 청산 이론으로 대규모 침체를 처음 경험했다. 미국 GDP는 1929년에서 1933년 사이 30% 이상 감소했고 물가는 1931년과 1932년 사이 10% 하락했다.
유럽은 환율을 달러에 연계하고 있었다. 환율 연계는 통화정책 연계와 동의어다. 미국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유지하면서 독일 등 패전국 경기 침체는 더 깊어졌다. 세계는 대공황 극복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택했고 대공황기 무역 규모는 67% 감소했다. 금본위제는 1933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달러를 평가절하하면서 사실상 종료했다. 미국 경기는 통화정책 긴축 강도 약화로 1933년부터 2년간 반등했다. 국제 통화 체계는 금본위제 포기에 따라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환율이 문제가 될수록 고개를 드는 의문이다. 버냉키 Fed 의장은 금본위제 회귀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신뢰 부족이다. 세계가 19세기 말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영란은행이 다른 정책 목표보다 금본위제 유지를 우선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각국은 영란은행 금 보유량이 적정 보유량을 하회할 때도 용인하며 금본위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다르다. 민주주의 발전으로 유권자 지위가 상승했다. 현대 유권자는 금본위제 도입에 따른 통화정책 포기를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유권자는 물가와 실업률에 민감하다. 금본위제는 미국 정부가 유권자 요구에 금 태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으로도 붕괴할 수 있다.
미국이 보유한 금 비중도 과거에 비해 줄었다. 1971년 금본위제 포기는 미국 금보유량 감소가 원인이었다. 달러를 금과 연동한 브레튼우즈 체제 당시 미국 금 보유 비중은 절반을 상회했으나 지금은 30% 내외로 감소했다. 미국은 금 보유 측면에서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어렵다. 금본위제 회귀는 바람에 그칠 듯하다. 달러화 지수는 장기 하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더 높다.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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