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저금리가 굳어지면서 재테크 수단이 다양해지고 있다. 1988년 쌍문동에서 동네 주민들의 재테크 이야기 속에 회자되던 17%의 은행 금리는 사라졌다. 1.7%의 금리다. 낮아진 금리에 발 빠른 투자자들은 각종 금융 자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금 투자도 그중 하나다.
금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 온 귀금속이다. 다이아몬드와 더불어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귀금속이며 변하지 않는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금괴 또는 골드바는 부의 상징이다. 부의 상징과도 같은 금에 투자하는 방법은 많다. 국내외에 상장된 ETF(주가연계증권)에 투자하는 방법이 대표적이고 골드바나 실물 금을 사는 방법도 있다.
다양한 투자 방법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수익률이다. 금값을 움직이는 변수에 대해 알아둬야 한다. 금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 또는 안전 자산으로서의 투자처로 손꼽힌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가지가 다소 상충한다는 사실이다.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기에 긍정적이다. 경기가 좋을 때 흔히 우리는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고 안전 자산 투자 비중은 줄인다.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는 금값은 상승하지만 또한 그 결과물로 경기가 좋아지면 금값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금의 이러한 모순은 금 투자에 대한 어려움을 키우는 요소다. 다행스럽게도 이 두 모순된 상황을 종합해 결론 내주는 지표가 있다. 바로 실질 금리다. 실질 금리는 명목 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차감한 수치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 금리는 낮아진다. 금값 상승을 의미한다. 경기 개선 기대감이 높아져 위험 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 즉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약해지면 실질 금리는 높아진다. 금값 하락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 효과가 큰지 위험 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더 큰지에 따라 실질 금리가 정해지고 이는 금값으로 연결된다.
지난 20년간 미국 실질 금리와 금값 등락률 사이 상관계수는 0.9 이상이다. 쌍둥이까진 아니지만 형제 정도의 관계는 된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매일 접하는 뉴스가 실질 금리를 높이는 변수인지 낮추는 변수인지에 따라 금값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질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바로 통화 및 재정 정책이다.
<미국 10년 실질 금리와 금 가격 추이>
<금값과 실질금리의 상관관계>
금값이 최근 온스당 1250달러 내외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작년 11월 초 1300달러를 넘나들던 금값은 트럼프 당선과 작년 12월 Fed(미국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1100달러 초반대까지 급락한다. 트럼프 당선과 금리 인상이 모두 금값에는 악재로 작용한 셈이다. 왜일까.
우선 트럼프의 정책이다. 트럼프는 강력한 인프라 정책과 세수 인하 정책을 내세웠다. 이 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실질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1)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서 잠재 성장률을 제고시키고 2) 재정 적자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증가로 국채 수급을 악화시켜 실질 금리 상승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실질 금리는 빠르게 상승한다. 물론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개선시켜 기대 인플레이션율도 빠르게 상승했지만 이보다 명목 금리 상승 폭이 더 커 실질 금리가 상승했다.
다음으로 Fed의 금리 정책이다. Fed의 기준 금리는 곧바로 실질 금리에 직결된다. Fed의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에 대한 신호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상승시킬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명목 금리 상승효과가 훨씬 크다. 일례로 Fed가 기준 금리를 0.25%p 인상하면 2년 금리도 비슷한 상승 폭을 보일 수밖에 없고 이는 중장기 국채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경기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실질 금리에 영향을 준다고 언급했지만 Fed의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그 이상의 영향력이 있다. 작년 12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통화 정책에 대한 논의와 결정이 이뤄지는 회의로 우리나라의 금융통화위원회를 떠올리면 됨)에서 Fed가 통화 정책에 대해 투자자들이나 전문가 예상보다 한발 빠른 금리 인상 스케줄을 발표하며 시중 금리가 일제히 상승한 바 있다. 두 차례로 예상됐던 2017년 금리 인상 횟수를 세 차례로 상향시킨 것이다. 이 역시 금값에는 해악이었다.
금값의 내일을 예상해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제 두 가지다. 미국의 재정 및 통화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예측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수급이나 정책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두 가지만 잘 전망해도 금의 향방은 알기 쉽다. 미국의 재정 정책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채무 한도가 목에 찬 정도가 아니라 목을 넘어선 상태에서 추가적인 국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2018년 예산안을 둘러싼 각종 법안 처리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 갈등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 갈등까지 부각되며 한동안 잡음이 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예산안이 그가 공언한 대로 되지 못한다면 결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약화돼 실질 금리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재정 정책은 실질 금리 하락, 금값 상승 쪽을 가리키고 있다.
통화 정책은 12월 깜짝 이벤트 이후 정체 국면에 진입했다. 옐런 의장은 통화 정책과 관련해 함구 모드에 들어갔지만 옐런만큼 영향력이 큰 피셔 부의장은 연내 세 차례 인상이 적절하다며 작년 12월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밝혔다. 실질 금리 입장에서는 상승 동력이 약화된 상황이다.
실질 금리가 정책 영향만 받지는 않는다. 실제로는 경기가 더 중요하다. 정책 역시 경기 전망에 영향을 미쳐 실질 금리를 움직일 뿐이다. 제조업이나 소비와 같은 실물 경기가 빠르게 살아난다면 정책과 무관하게 실질 금리는 상승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1분기에 발표된 지표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에서 발표하는 세계 경기 서프라이즈 지수(이하 CESI)가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지표 개선 속도보다 빠르면 (+), 느리면 (-)로 기록되는 지수다. 이 지수는 지수 발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위치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추가 개선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기 측면을 봐도 당장은 실질 금리의 빠른 반등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정책을 봐도, 경기를 봐도 실질 금리의 정체 또는 하락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값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커 보인다.
CITI 경기 서프라이즈 지수(선진 및 신흥국 합산 지표)
이 글은 금에 투자하라는 글이 아니다. 금 투자 시 고려할 변수들에 대해 정보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글이다. 지금으로선 단기적으로 금값 상승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모든 전망이 그러하듯 절대적인 예측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트럼프의 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클수록, 그래서 미국 통화 정책이 지금보다 더 빨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될수록 금값의 상승 가능성은 커진다는 사실이다. 연내만 보면 금값은 1100~1400달러의 밴드 내에서 등락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단기적으로 1250달러에서 아래쪽보다는 위쪽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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