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8일 역대급 폭우로 인해 서울 강남구 대치역 인근 도로가 침수차량으로 뒤엉켜 있다. 연합뉴스
폭우와 폭염, 태풍이 부쩍 잦아지면서 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된 ‘기후 위기’에서 그 원인을 찾는 건 새롭지 않다. 이런 위기에 속타는 곳 중 하나가 보험사다.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는 보험사들로선 예기치 못한 대형 자연재해 빈발로 날로 늘어가는 보험금이 부담스럽다. 특히 과거의 경험율을 토대로만 보험료를 책정했다간 기후 위기 시대에 파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예측이 어려운 거대한 리스크 등장에 전세계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 자연재해로 늘어나는 보험지급액
자연재해 피해에 대해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3일 국제 재보험사인 스위스리 산하 연구소가 지난 9일(현지시각) 펴낸 보고서를 보면, 올해 1∼6월 자연재해로 발생한 전세계 보험지급액은 약 500억달러(약 66조원)다. 이는 최근 10년간 상반기 평균 보험지급액(320억달러, 올해 물가 기준)보다 50% 넘게 많다.
국내의 경우 전체 보험금 지급액 중 자연재해로 인한 지급액만 따로 집계해 공시되지 않는 탓에 기후변화로 인한 보험지급액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험상품의 보험지급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는 있다.
재해보험은 폭우·태풍·폭염 등으로 주택·상가·농작물·가축·양식수산물에 발생한 피해를 보장하는 공적 보험이다. 풍수해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양식수산물재해보험 등이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보면, 풍수해보험의 지급보험금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평균 51억5700만원이었으나 2016∼2022년엔 169억8100만원으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농작물재해보험도 2001∼2009년 연평균 330억원 수준이던 지급보험금이 2010∼2019년엔 277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020∼2022년엔 연평균 7152억원으로 또다시 급증했다.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재해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입률도 상승한 데 따른 결과다. 한 예로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률은 2001년 17.5%였으나 지난해엔 49.9%까지 상승했다. 이젠 사과 등 보장 대상 품목을 재배하는 농가 2곳 중 1곳은 이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침수에 따른 자동차 보험 지급액(추정)이 지난해 8월과 9월 폭우와 태풍 힌남노 등의 영향으로 2002년 이후 가장 많은 약 2147억원에 이른 것도 자연재해가 보험사에 타격을 준 사례로 꼽힌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보험금 지급금이 늘어나는 동안 기후변화가 심화해온 사실이 확인된다. 연평균 기온은 1970년대 12.14도에서 꾸준히 올라 2020년대(2020∼2022)에는 13.06도까지 상승했다. 연평균 강수량도 같은 기간 1198.89㎜에서 1341.60㎜로 증가했다. 행안부 자료에선 자연재해 발생 횟수도 1985년 20회에서 2021년 30회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 기후리스크 측정·평가 능력 따라 보험사 명운 갈릴 수도
문제는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통상 보험사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모델링을 통해 자연재해 발생 가능성과 이에 따른 예상 피해금액을 추정하는데, 최근 기후변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과거 데이터로는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하고 평가하는 역량에 따라 보험사 간 희비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가 보험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온 남상욱 서원대 교수(경영학부 금융보험학)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얼마나 빨리 진척될지 누구도 예단할 수 없기에 이전의 경험요율만으로는 보험가격을 정확히 산정해낼 수 없다”며 “기후변화 리스크를 부정확하게 평가해 보험사가 파산하거나, 고위험물건은 아예 인수를 차단해 보험공급에 한계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미국 최대 손해보험사인 스테이트팜은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신규 주택보험 인수를 중단했다. 최근 매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이 지역 재보험료(보험사가 또다른 보험사에 위험 보장을 맡기며 내는 보험료)가 상승하자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2020∼2021년에도 루이지애나주에서 4개 허리케인이 몰아쳐 보험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12개 보험회사가 파산하고 50개 이상 보험사가 허리케인 관련 보험 인수를 중단한 바 있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국립보호구역의 산이 불타고 있는 모습이 멀리 보인다. ‘요크산불’은 30일 현재 조슈아나무와 유카가 포함된 8천5백만평 이상의 면적을 태우면서 주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전세계 금융감독당국과 주요 보험·재보험사들이 기후리스크 대응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까닭이다. 200개국 보험감독당국이 모여 만든 국제보험감독자협회(IAIS)는 2018년 낸 보고서에서 기후위기가 보험사에 미칠 영향을 물리적·이행·배상책임 리스크로 분류해 보험사들에게 제시하며 대책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산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CFD)는 2017년 기후리스크 특정 방법과 재무적·경영적 영향에 대한 평가 방법, 이를 토대로 한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방안 등을 공시하도록 권고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도 2025년부터 이 같은 기후 관련 이에스지(ESG)공시를 의무화하기로 한 상황이다. 한국의 금융당국도 3분기 중으로 2025년부터 이에스지 공시 의무화를 적용받는 대상 기업과 공시 기준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 국내 금융업계 대응은 아직 걸음마 수준
그러나 국내 금융업계 기후리스크 관리 전략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기후리스크를 아직 ‘먼 얘기’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삼성화재 등 일부 대형사가 이에스지경영보고서 등에 중장기 리스크로 기후리스크를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관련해 연구를 진행하는 정도다. 이승준 보험연구원 이에스지연구센터장은 “회사별로 온도차가 심하고, 자기 회사가 어떤 기후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금융지주사들이 기후리스크를 관리하고, 이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대개 탄소중립 등을 목표로 한 ‘이행리스크 관리’가 주를 이룬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행보를 걷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있을 뿐 기후변화가 보험사에 미칠 물리적 리스크에 대한 측정·평가나 관리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내 한 대형 금융지주사의 경우 학계와 공동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리스크를 측정하는 관리모형을 개발했지만, 아직 보험 계약 인수나 보험요율 산정 등 실무 업무에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 금융감독원이 2021년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를 발간하고 지난해 개정판도 내놨지만, 업계에서는 이행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계의 기후리스크 측정 역량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지난해 9월 은행·보험업계 대형사들과 공동작업반을 꾸려 금융부문 기후리스크에 대한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작업반은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이행리스크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 기후 시나리오와 스트레스테스트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