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의장은 연단 뒤에 앉아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지난 1월 취임 후 처음이다. AP연합뉴스
29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한국 경제에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전망이다. 동맹국에조차 미국 이익만을 앞세웠던 전임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트럼프가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가입은 꺼리는 등 일종의 ‘양면전술’을 쓰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구매’(Buy American)나 ‘미국 내 제조’(Made in America)를 강조하고, 미국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서 생산한 상품을 미국 내에 판매할 때 징벌적 과세를 매기는 ‘오프쇼어링 추징세’를 추진하는 모습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선 바이든과 트럼프는 차이가 없지만, 그 방식은 크게 다르니 한국은 선제적으로 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 바이든표 ‘슈퍼부양책’에 증세 뒤따라
바이든이 내민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은 단기적으로 한국에 기회다. 바이든 행정부는 1조9천억달러 규모 ‘미국 구조계획’(American Rescue Plan)에 이어 8년간 2조3천억달러에 이르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초대형 ‘인프라 패키지’도 꺼내 들었다. 미국의 총수요 확대 정책은 한국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것이 내포한 중장기적 위험성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벌써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고, 경기가 과열될 경우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당장은 아니어도 1년 내 미국 금리가 올라간다면, 부동산이나 가상자산 등에 버블이 형성되어 있는 한국에는 전반적인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재정확대에 이은 증세 흐름도 중요하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로 올려 트럼프 정부 이전 수준으로 돌리기로 했다. 한국의 대미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부품, 반도체, 석유제품 등 미국 가계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는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다국적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한세도 인상할 계획인데, 우리의 세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불투명하다. 1차적으로는 해외 자회사가 많은 삼성전자나 현대차로부터 받는 세수는 줄고, 한국에서 사업하는 구글과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에서 더 많은 세입이 생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아직 적용 업종이나 과세 방식 등이 정해지지 않아 증감 여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다자주의 복원인가, 자국 중심주의 강화인가
미·중 사이에 지속될 갈등 양상도 한국 경제에는 걱정거리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인준을 주도할 정도로 유화적 입장이었지만, 직접 정권을 잡은 뒤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을 물려받았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중국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 자체는 트럼프 때와 비슷한데 방식이 다르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압박했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 입장을 정하기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바이든은 삼성을 비롯한 19개 반도체 기업에 공격적인 반도체 투자를 권고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형태의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 미·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투자 확대를 요구할 경우 거절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어차피 스마트폰·피시 등 완제품 공장은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 뜻대로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들어도 다시 아시아로 와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미국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해도 실질적 생산 능력 확충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의 위상은 절대적인 만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산업의존도 요인분해를 통한 우리 경제 아이티(IT)산업 의존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의 수출 비중은 17.9%(2019년 기준)로 산업분류 내에서 가장 높았다. 자동차(12.2%), 기계(11.5%), 석유화학(11.3%) 등이 뒤를 이었다.
■ 취임 첫날부터 기후위기 대응 ‘기조 전환’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정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분야는 환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트럼프가 공식 탈퇴한 파리기후협정 복귀를 선언했고, 곧바로 모든 관용차를 미국산 전기차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2조3천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예산안에도 전기차, 친환경 주거, 청정에너지 분야가 상당수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런 방향 전환이 신기술 확대를 바탕으로 한 일자리 확대와 미국 제조업 부흥에 효과를 낸다는 계산이다.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국 입장에서는 각종 압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 세계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역조치 동원도 가능하다고 공언한 바 있어 이런 압박은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바이든 정부는 탄소배출 감축에 소극적인 기업·국가에 추가로 관세를 물리는 ‘탄소 국경세’까지 언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조 전환이 한국에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말한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그동안 석유화학·철강 분야 등 우리 기간산업들은 ‘탄소 중립’에 아무 준비도 안 했다. 이게 바로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이라며 “이 전환에 발맞춰 간다면 미국 시장은 우리에게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파고를 맞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