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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정부 믿었던 세입자 분통 “이젠 곧장 집 살 것”

등록 2018-09-07 05:00수정 2018-09-10 09:15

부동산대책 긴급점검
① 8·2대책 왜 안 먹혔나
현장 | 욕망 꿈틀대는 서울 아파트

8·2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값 7% ↑
작년 용산서 한번 더 전세 택했지만
올초 집값 8억 찍더니 어느새 10억
서울 외곽으로 뻗어가는 ‘갭투자’…
“잠잠하던 중랑구도 집주인 뻣뻣”
지난 8월 경전철 착공 계획 발표 뒤로 서울 중랑구 일대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 걸린 '경전철 면목선 착공' 관련 펼침막.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8월 경전철 착공 계획 발표 뒤로 서울 중랑구 일대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6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 걸린 '경전철 면목선 착공' 관련 펼침막.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편집자주> 서울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국지전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부동산 광풍을 부르는 서막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집 없는 서민들의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첫해인 지난해 투기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춰 내놓은 ‘8·2 부동산 종합대책’이 불과 1년여 만에 시험대에 섰다. 정부 부동산 대책의 한계와 문제점,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긴급 진단한다.

지난해 정부가 8·2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규제지역의 집값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 25개구의 평균 아파트 매맷값은 7%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안에서도 지역별로 집값 상승을 바라보는 민심은 각양각색이다. ▶관련기사 8·9면

■ 집주인 아파트 값은 갈수록 ‘똘똘’해지고

서울 용산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김현진(가명·42)씨는 요즘 “하루 자고 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가급적 부동산 관련 뉴스는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날마다 쏟아지는 소식을 피해 가기도 어렵다. 그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둔 지난해 초 집을 살 것인가, 한번 더 세를 살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 여러 차례 고민한 끝에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보증금 4억원대 전셋집에 들어갔다. 5살 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집을 사기로 한 것이었다.

심상찮은 조짐은 지난해 가을 무렵 시작됐다. 정부의 8·2 대책 이후 ‘똘똘한 한 채’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더니, 김씨가 세를 들어 사는 집도 ‘똘똘한’ 아파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봄 8억원으로 치솟은 아파트값은 박원순 시장의 ‘용산·여의도 통개발’ 발언 이후로는 한달여 만에 10억원으로 뛰었다. 김씨는 “애초엔 전세 만기인 내년 봄쯤 같은 단지 32평형 아파트를 살 계획이었다. 계약 당시 시세는 6억원대 초반이었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계속 어울려 지내게 하려고 웬만하면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청약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곳도 김씨가 발붙이긴 힘들었다. 그의 청약 가점이 50점대 중반으로 낮지 않은 편이었지만, 서울 시내 아파트 당첨에 필요한 수준은 60점대 중반을 넘어섰다. 집값 급등 여파로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은데다, 신축 프리미엄으로 2억~3억원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고가점자들이 몽땅 청약시장으로 몰려든 듯했다. 분양가와 대출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7월 초 청약을 신청했다 탈락한 마포 한 아파트의 분양가(84㎡ 기준)는 8억9900만원이었다. “사실 당첨이 되더라도 투기지역이라 중도금 대출이 분양가의 40%에 묶여 있어, 전세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나면 잔금을 어떻게 치를지 막막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매번 자신과 같은 실수요자가 유탄을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상의 부동산 카페를 들락거리다 보면 나 같은 매수 대기자가 줄지어 있다”며 “금융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 이상 서울 집값은 안 떨어질 것 같아서, 급등세가 조금 진정되면 곧장 집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 4억 빚내서 산 아파트는 갑절로 껑충 뛰어

경기 고양시 화정지구에 살던 직장인 김성무(가명·47)씨는 4년 전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교육여건을 고려해 일찌감치 집을 ‘사교육 1번지’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곧바로 그는 10년 전 2억3천만원에 산 화정의 아파트를 2억5천만원에 처분했다. 이어 대치동 학원가 부근에 있는 시세 6억원짜리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4억원·85㎡)로 입주했다.

대치동에 거주한 지 2년 만에 재계약을 할 요량으로 중개업소에 연락을 했더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집주인이 두차례나 바뀌었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집주인이 바뀌었으면 세입자한테 알려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더니, 중개업소 쪽에선 “강남은 다 그렇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말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치동의 한 중개사무소 쪽은 “서울 평균 실거주율은 50% 안팎인 반면, 강남권은 3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경기도 신도시에 산다는 새 집주인은 김씨에게 보증금 대신 추가 월세를 요구했다. 월세는 부담이 크다고 사정해봤지만, 집주인은 자신도 빚을 내서 투자한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때마침 직장에서 임원으로 승진을 해 퇴직금 목돈을 쥐게 된 김씨는 결국 4억여원의 대출을 끼고 인근 같은 평형의 아파트를 샀다. 2년 전 6억원이던 시세가 8억원으로 뛰어 망설였지만, 어차피 아이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거주해야 하고 대출금리도 낮은 편이어서 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도 내심 “이자 부담 이상은 시세가 오르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다. 기대만큼 아파트값은 계속 올랐고, 상승세가 갈수록 가팔라졌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하반기 8억원 안팎이던 아파트의 9월 첫주 시세는 12억5천만~14억5천만원으로 거의 갑절이 됐다. 김씨는 “대출 원리금을 2년 만에 다 갚은 셈이 됐다. 투기에 나설 생각으로 추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시세차익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 잠잠하던 중랑구 일대도 조금씩 꿈틀

6일 찾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는 ‘환영 경전철 면목선 조기착공 확정!’이라고 적은 펼침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난달 1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경전철 면목선을 2022년 안에 착공할 계획을 밝힌 뒤, 중랑구 일대 중개사무소들에는 아파트 매입을 문의하는 전화가 평소보다 2~3배씩 늘었다. 서울 다른 지역의 집값이 크게 오르며 추가적인 투자처를 찾던 이들이 경전철 개발 소식까지 접하며 중랑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는 가격 이점이 개발 호재와 맞물리면서 서울 다른 지역의 아파트값과 ‘키 맞추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랑구는 그동안 서울지역 부동산 과열 분위기에도 잠잠한 지역이었다. 면목동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아무개(71)씨는 “노원구는 학원가 때문에 오르고 중랑천 건너 동대문구만 해도 재개발 이슈 덕에 아파트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학원가도 없고 개발마저 더딘 외곽지역이다 보니 집값은 정체되고, 결국 사람이 모이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이어졌다”며 “서울은 다 오르는데 우리만 제자리이다 보니 이제는 이 집 팔아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감정원의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부동산 활황기가 시작된 2014년 7월 이후 중랑구 아파트 가격은 11%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이 23.1% 오른 것에 견주면 상승폭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다만 최근 중랑구 집값도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주간 단위로 0.1%대나 그 이하 상승률에 그치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폭이 이달 3일 기준 0.3%까지 오른 것이다. 여전히 같은 기간 서울 평균(0.47%)보다는 낮지만, 집값 오름세에 따른 기대심리가 서서히 퍼지고 있다. 면목동의 한 아파트 근처에서 24년째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정아무개씨는 “몇달 전만 해도 집주인 입장에서 팔리기만 기대했던 매물이 지금은 전혀 없다. 집주인들 고개가 뻣뻣해졌다”며 “지난해까지 4억 중후반대였던 이곳 아파트에서 5억8천만원까지 낼 의사가 있다는데도 6억원 이하에는 못 팔겠다는 집주인까지 나온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랑구 일대 중개사무소들은 정부의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가 있다고 해도 “중랑구만큼은 좀 더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면목동의 또다른 중개사무소 대표 김아무개씨는 “원래 1억원 정도면 갭투자가 가능했던 지역인데 최근 들어선 1억5천만원은 있어야 가능해질 정도로 집값이 올랐는데도 인근 상계동이나 하계동의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투자자들의 문의전화가 꾸준히 있다”며 “웬만한 부동산 규제를 내놔도 추가적인 상승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이는 움직임은 멈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무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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