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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이번엔 ‘토지공개념’ 실현될까?

등록 2018-09-14 04:59수정 2018-09-14 07:56

◎여당이 띄우는 ‘토지공개념’ 톺아보기

노태우 정부 ‘토지공개념 3법’ 추진
공익 위한 불로소득 환수 취지는 정당하지만
과도한 제한, 획일적 적용 문제삼아 위헌

노무현 정부 ‘종합부동산세’로 다시 등장
‘세대합산 방식’ 위헌으로 세율 줄어들어

문재인 정부 들어 토지공개념 다시 띄워
추미애 전 대표 “지대추구의 덫 걷어내야”
청와대 개헌안에도 ‘토지공개념’ 명시

“역대 정부 부동산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사용
토지공개념 정책수단 실현해야” 목소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우리나라 땅 부자 상위 1%가 사유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집 없는 가구’가 전체의 44%인데, 집 부자 상위 1%는 평균 6.7채를 갖고 있다. ‘부동산 계급’이 고착화한 지 오래다. 전·월세 난민,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청춘이 아우성치는데, 집값은 이를 비웃듯 천정부지로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토지공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의 소유와 이용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철학이다. 헌법 23조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법에도 어느 정도 토지공개념 정신이 반영돼있다. 하지만 실제 조세 정책 등이 헌법 정신을 따라가지 못해 부동산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 11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토지공개념’을 주고받았다. 이 대표가 “토지공개념을 도입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인데 개념으로는 도입해놓고 20년 가까이 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지 않았다”면서 토지공개념을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는 “현실은 토지공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의 공통, 유일 자산인 토지가 특정 소수의 투기 수단으로 전락하고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 ‘기본소득용 국토보유세’와 ‘장기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공공택지의 분양수익 환수’라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토지공개념을 적극 정책으로 실현한 건 과거 노태우 정부다. 1980년대 후반 경제 호황으로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자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어닥쳤다. 서민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사회적 문제가 됐다. 정부는 1989년 12월 30일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으로 불리는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을 제정했다.

택지소유상한법은 가구당 200평 이상 택지 소유자에게 공시지가의 일정 비율을 세금을 부과한 제도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유휴토지 등의 소유자에 대해 3년 단위로 전국 평균 지가상승률의 150%를 넘는 지가상승분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개발이익환수법은 택지개발, 공단조성 등 개발이익의 25%를 부담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1989년 2월23일 열린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한겨레 자료사진.
1989년 2월23일 열린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한겨레 자료사진.
이 제도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헌법재판소는 1994년 토지초과이득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1999년 택지소유상한법에 위헌 결정을 했다. 이 때문에 “토지공개념은 반헌법적이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헌재는 공공 이익을 위해 토지소유를 제한하는 취지를 부정하진 않았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기준시가 산정 방법을 대통령령에 위임해, ‘포괄적 위임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법을 정밀하게 설계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헌재는 택지소유상한법도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했으나, 소유 상한을 200평으로 지나치게 낮게 잡은 점, 소유 목적이나 택지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상한선을 정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법 적용을 세밀하게 했다면 합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개발이익환수법은 헌재의 합헌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결국 ‘토지공개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역대 정부가 이를 실현할 의지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토지공개념은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이름의 보유세로 다시 나타났다. 당시 종부세는 6억원(1주택자는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1~3% 세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세대합산 과세에 위헌 결정이 나면서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세율이 0.5~2%까지 낮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토지공개념 강화 목소리가 이어졌다.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토지공개념의 대표 학자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모든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천인 ‘고삐 풀린 지대’를 그대로 두고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독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했다. 토지는 토지대로, 임대료는 임대료대로 '지대추구의 덫'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올해 3월 발표한 개헌안에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그 돈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태경 헨리 조지포럼 사무처장은 13일 오전 <와이티엔>(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역대 정부들이 토지공개념을 국정철학으로 가져가면서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개발하고 제도화시켰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동산을 경기가 나빠지면 부양하는 수단으로, 가격이 내려가면 다시 올리려는 냉·온탕식으로 하다 보니 자리를 못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유세가 터무니없이 낮다. 일단 보유세를 걷어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얼미터가 12일 <교통방송>(tbs) 의뢰로 전국 성인 500명에게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95% 신뢰수준에 ±4.4%) 종부세 강화에 찬성하는 의견이 56.4%, 반대 의견이 30.7%로 나타났다. 보수 야당 지지층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지역과 계층에서 종합부동산세 강화에 찬성했다(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날 오후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구간을 낮추고 최대 세율을 노무현 정부 때보다 올리는 등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투기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대책이 일시적 집값 안정을 위한 수단에 그칠지, 지속적으로 토지공개념 정신을 구현의 첫걸음이 될지 주목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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