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측근으로 알려진 맥 헨리 의원은 1월 31일 옐런 의장에게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금융 규제 관련 국제 학술회의 등에 참석을 자제해달라는 일종의 경고장이었다. 도드-프랭크법 폐지를 고려하고 있던 트럼프의 의중을 미리 헤아려 좇은 결과물이다. 트럼프는 맥 헨리가 서한을 보낸 지 3일이 흐른 2월 3일에 도드-프랭크법 재검토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가 옐런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온 국민뿐만 아니라 조금만 미국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니 충성심(?)에서 알아서 옐런을 구박하기 시작한 셈이다. 공화당은 2015년 미 연방준비제도(Fed) 감사법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전례가 있고 계속해서 추진 중인 사안이라는 점에서 옐런을 비롯한 현 Fed 고위층에 대한 압박은 지속될 모양새다.
트럼프는 왜 옐런을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오바마와 힐러리 도우미라는 인상 때문이다. 2015년 트럼프는 대선 출마에 즈음해서 Fed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주식 등 자산 시장의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금융 시장과 경제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자 조급해진 그가 옐런에게 화살을 겨눈 셈이다. 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 여름에 트럼프는 저금리에 대해 옹호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내가 하면 선, 남이 하면 악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사람이다.
근거야 어쨌든 그의 옐런에 대한 미움은 금융 시장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균열만큼 무서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둘 간의 싸움이 왜 불편한 이슈일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숫자가 적시된 적은 없다. 수 주 내 의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이는 2018년 예산안이 트럼프의 인프라 계획에 대한 맛보기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막대한 인프라 투자의 재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는 국유지에서 생산되는 셰일 에너지의 판매다. 두 번째는 지출 삭감이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이에 따른 지출 감소분을 재정 지출 확대에 이용하겠다는 심산이다.
이 두 가지와 관련해 생각해볼 점이 많다. 에너지 판매에 따른 정부 세수 확보는 유가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필수인 인프라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재원이다. 이미 생산하고 있는 물량에 더해 새로운 물량 공급이 이어질 경우 유가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맞을 수 있다. 민간 기업의 투자 부진과 유가 하락에 따른 소비 이연 등 일종의 구축 효과를 초래할 수 있어 고려돼야 할 변수다. 오바마케어 폐지에 따른 지출 삭감도 효과가 크지 않다. 완전한 폐기에 대해 공화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만큼 실제 폐기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폐기든 수정이든 건강보험과 관련된 지출이 완전히 삭감되지 않는 만큼 이를 통한 재원 확보도 인프라 정책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못하다.
결국 국채 발행이 대안이다. 미국 국채의 주 수요층을 크게 내부와 외부로 나눌 수 있다. 내부는 각종 연기금이나 보험사와 Fed다. 이중 Fed는 2.5조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 중이다. 외부는 동아시아 4개국이 가진 국채 규모가 가장 크다. 2.4조달러다. Fed가 보유한 국채 수준에 버금간다. 알려지다시피 트럼프는 동아시아 4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막대한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거둬가는 건 나쁜 행동이라며 규탄 중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 등의 환율 정책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다. 4월에 발표될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과 한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지나 않을까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동아시아 4개국들이 점차 알아서 줄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부터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줄어들게 되면 동아시아 4개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도 줄어들지 모른다. 동아시아 4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와 국채 보유 추이는 거의 비슷한 흐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동아시아 4개국은 미국에는 큰 은인일지 모른다. 물건도 만들어서 주고, 그 물건을 산다고 빚을 낸 미국인들의 부채도 떠안아준 격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트럼프는 이 사슬을 끊겠다고 하니 동아시아 4개국의 미국 국채 수요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건 Fed다. Fed의 미국 국채 수요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이런 Fed가 국채를 사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면 트럼프는 어떻게 될까.
[Fed의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 시점 설문조사]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Fed 내 위원들은 최근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와 관련해 논의 필요성을 언급 중이다. 만기증권 재투자는 현재 Fed가 보유한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Fed가 해당 국채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다시 매입해주는 정책이다. 매우 견조한 수요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만기증권 재투자를 종료하겠단 의미는 가지고 있는 국채를 팔지는 않겠지만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는 다시 사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Fed의 자산 축소를 의미한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Fed가 자산을 줄였던 적은 한 두 번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운이 지지리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100년간 없던 일을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다가올 때 우리는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는 불안감은 트럼프에게도 마찬가지다. 재정 정책의 큰 버팀목을 잃게 된다는 말과 같다.
[향후 1년간 Fed 금리 인상 전망]
트럼프와 Fed 간 갈등으로 우려되던 일들이 벌써 발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15일 상하원에서 반기 통화 정책 보고서를 발표한 옐런은 올해 금리 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에 대해서는 (적정 수준의) 금리 인상 이후 고려하겠다고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적정 수준의 금리라는 게 매우 애매한 표현이나 대체로 1.5% 내외 수준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즉, 금리 인상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 시점도 가까이 다가온다는 의미다. 작년 8월 말 잭슨 홀 연설 때까지만 해도 옐런은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언급했다. 불과 몇 달 사이,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옐런의 태도가 분명 변했다. 옐런의 복심으로 알려진 뉴욕 연준 총재인 더들리가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Fed 대차대조표 축소(만기증권 재투자 종료)가 빨라질 수 있다고 언급한 사실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Fed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에 대해 2018년 하반기부터라고 생각했던 투자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일갈이다.
재정과 통화 정책 간 불협화음은 투자자에게 큰 부담이다. 물론 트럼프가 4월쯤 새롭게 Fed 이사를 세 명이나 임명할 수 있다는 점은 정책 공조 측면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인다. 다수결이 원칙인 Fed 의사 결정 과정에 있어 12표 가운데 3표를 확보하기에 트럼프가 이를 믿고 논란거리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Fed의 통화 정책은 큰 물줄기와 같아서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옐런과 고위층들을 계속 자극할 경우 결코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해직이 이미 통보된 것과 마찬가지인 옐런보다 앞으로 4년 동안 국정을 운영해야 할 트럼프가 잃을 것이 많다. 금리 인상 여부 또는 만기증권 재투자 종료 시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3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기울여지는 시점이다. 최근 1년 이내 금리 인상 전망 지표를 보면 빠르게 상승 중이며 이는 발 빠른 투자자들이 이미 Fed의 변화에 대비 중이라는 뜻이다. 유비무환을 되새길 때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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