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전병유 대표 발제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보수쪽 발제자인 최영기 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은 노동시장 불평등 개선을 위한 해법으로 입사연도에 따라 보수와 대우가 획일적으로 정해지는 현재의 연공중심적 노동시장구조를 직무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직무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진보쪽 발제자인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비정규직의 보호 강화를 위해 정규직의 보호 완화, 상위 10% 소득층의 임금 양보 등과 같은 사회적 타협안을 제시했다.
최영기 전 상임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해법을 둘러싸고 지난 20년 가까이 논쟁을 벌여온 보수와 진보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대규모 고용조정이 진행되고 여러 형태의 고용계약이 분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핵심 문제로 등장했다”면서 “진보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고용형태를 법으로 직접 규제해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사용사유 제한 등의 규제를 더 강화하고 사내하도급 남용과 불법파견 확산을 근로행정 강화나 다른 법규로 막으려는 것은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고 실현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보수가 기간 제한을 3년으로 연장하거나 파견업종을 확대함으로써 비정규직 고용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를 벗어나는 것이고 노사와 여야 간 갈등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전 상임위원은 해법과 관련해 “정부가 주도하는 법개정 중심의 노동개혁 대신에 노사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기업 차원의 임금개혁과 근로시간 유연화, 인사관리 혁신이 대안”이라며 “노동시장구조 개혁은 연공 중심의 노동시장구조를 기업 횡단적인 직무형 노동시장으로 전환해 임금과 근로조건 등 고용계약의 내용을 유연하게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무형 노동시장이 발달하면 비정규직의 고용이 훨씬 더 안정될 수 있고, ‘동일노동-동일임금’ 원리가 확산되면서 근로자간 임금격차와 차별 소지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면서 “같은 원리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과 인사관리에서도 연공성을 완화시키고 직무가치를 강화하는 방향의 임금개혁과 직무혁신을 추진해야 고용안정과 정년을 넘어서는 장기고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병유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으로 ‘이중의 이중화’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은 고용형태상의 비정규직 문제와 대-중소기업 간 격차의 문제를 동시에 안고있다”면서 “1990년대 이후 자동화, 모듈화, 아웃소싱화는 규제완화와 제도의 부재로 비정규직을 양산시켰고,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체제에서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한 외주화와 단가인하 전략은 영세사업체의 저임금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계에 의한 숙련의 대체가 매우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고 모듈화와 아웃소싱도 매우 불공정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노동개혁보다 공정거래 및 노동분배율 제고 등을 재벌개혁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자동화·아웃소싱·탈숙련에 기초한 생산체제를 대체할 대안생산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교수는 또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기본모델인 노동시장의 유연성(규제완화)와 사회적 보호를 교환하는 유연안정성은 오히려 이중화만 심화시킨다”면서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를 완화하는 대신에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를 강화하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스웨덴, 독일 등과 같이 임금격차 축소를 위한 ‘연대임금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최저임금과 근로기준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시장 개선, 산별노조와 산별교섭, 단체교섭 효력의 확장, 조달정책을 통한 공공부문 주도의 저임금 해소 등을 포함하는 한국형 연대임금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조정 문제에 대해 “고위 공무원과 전문직, 기업 최고경영자 등 상위 1~5%의 양보가 전제될 때 상위 10%의 양보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노동자들도 고용보호를 받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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