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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사람을 소외시킨 경제가 오히려 성장을 막고 있다”

등록 2014-09-10 21:55수정 2014-09-12 11:21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운동 자택에서 ‘사람 중심 경제’를 주제로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관악구 행운동 자택에서 ‘사람 중심 경제’를 주제로 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람 중심 경제’로
기획인터뷰 ②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 7월10일 동반성장연구소가 주최한 월례포럼에 조순(86) 서울대 명예교수가 노구를 이끌고 강연에 나섰다.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매우 무겁게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분열, 부패, 부조리, 몰염치가 당연시되고 있다. 국민의 가치관은 ‘돈이면 그만’이란 식이고, 믿음과 성실이 없어졌다. ‘성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돈만 아는 사회에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하면서 현대 한국 경제학의 한 줄기를 세우고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을 지낸 그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는 달성했다고 치더라도 공화정치를 해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헌법이 규정한 공화국, 즉 ‘공공의 나라’ 또는 ‘공중의 복리를 중요시하는 나라’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관악구 행운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는 “우리 경제는 규모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최고 수준이고, 정치권력은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며 “사람은 경제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재벌 중심 성장전략이
고용·분배 어긋난 양극화 불러
국내총생산 수치 쫓는 성장보다
사람 목적으로 한 성장도식 필요

돈벌이·1등 목표로 하는 교육이
인간 심성 무너진 사회 만들어
시간 걸려도 인문교육 수준 높이고
양보·타협하는 문화적 성숙 필요

노동자 경영참여하는 독일모델이
현존하는 바람직한 자본주의 모델
정부가 의견수렴해 청사진 그리고
국민들 설득해 이해·동의 구해야

-4월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보고, 많은 국민이 어떻게 그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큰 충격을 받았다.

“세월호 사고에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실상이 압축돼 담겨 있다. 정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고, 사람들이 돈만 알고 자기 이익 위주로만 생각하는 것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질서가 무너졌고, 규범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 주도 개발 시대부터 우리는 공업화, 산업화를 추구해왔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폈다. 그때는 어느 정도 통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고용이 확대됐고 소득도 늘고, 처음에는 분배도 비교적 잘 이뤄졌다. 정치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발전이 이뤄졌다. 수출 주도적인 성장전략은 옳은 판단이었다고 본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까지는 비교적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재벌 중심의 성장이 이뤄졌다. 빨리 성과를 내고 업적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정부의 지원이 집중돼 재벌 위주의 성장이 고착화돼 버렸다. 그렇게 되면서 결국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 뒤론 성장과 고용, 분배가 어긋나게 됐다. 지금은 경제가 성장을 해도 고용이 잘 안되고, 고용이 늘어도 소득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양극화 시대가 돼 있다. 그것이 오히려 성장을 가로막고 많은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 경제의 성장 도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양극화와 빈곤의 확대는 자본주의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소득격차나 자살률 등 지표를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큰 나라이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나라라서 우리와 사정은 다르지만 그래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말이 금융위기이지 실물경제가 위기에 빠졌다. 양극화와 경제 불균형, 불안정이 상시화됐다. 영미권 경제는 자유주의, 개인주의를 숭상하는 체제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한때 ‘신경제가 도래했다. 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성장이 영구히 이뤄질 것이다’라는 환상이 퍼졌다. 그렇지만 결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이런 환상이 깨졌다. 다른 선진국들도 미국을 따라하는 경향을 보이다, 금융위기 전에 문제점을 알아채긴 했지만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유럽 등 다른 선진국 경제도 다 나쁘다. 신흥국들도 중국을 제외하고는 다 좋지 않다. 한국 경제는 고유 기술을 갖지 못한 채 성장을 해왔다. 재벌이 중심이 되어, 첨단기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들여다가 성장했다. 그래서 타격이 빨리, 크게 왔다. 수출 중심, 재벌 위주의 성장을 하다 보니, 중소기업, 내수 부문이 매우 취약하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치학자,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이제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한계를 맞이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앞으로 경제가 회복되는 나라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곳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저성장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본다. 일률적으로 성장하고 번성하고, 자원도 일률적으로 지배하고 소비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경제발전 속도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 각국은 저마다 자국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기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만 추구해왔다. 이것이 발전이라고 해왔는데, 아니다. 기술 혁신이 안되는데 성장이 계속되겠는가. 국제 시장에서 낙후해가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총생산 성장이라는 수치만 보지 말고, 무엇이 성장을 만들어내는지를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성장의 도식을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토지, 자본, 노동을 경제의 3요소라고 하여, 사람(노동)을 경제를 잘 만드는 수단으로 봐왔다. 그러나 사람은 경제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고, 저성장을 감내해가야 한다. 사람을 잘 가르치고, 가르친 사람을 잘 고용해서 쓰고, 일에서 떠나야 할 때 떠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잘 가르치는 데서부터 실패해왔다. 교육에 열성이 있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돈벌이, 1등이 목표인 우리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기술은 기술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인간의 심성이 무너진 사회를 만들어냈다. 협력과 공존에 대한 이해, 관용이 없어졌다. 기술 교육만이 아니라, 인문 교육의 실패이기도 하다. <소학>은 사람이 배워야 할 덕목으로 ‘화목, 근면, 천천히’를 꼽는다. 기본을 갖추는 것과 바른 정신이 중요하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풀검 지음)는 책이 있다. 정말 그래야 한다.”

-악순환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양보하고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공동체의 입장에서 세상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선진국이란 게 무엇인가? 우리는 국내총생산만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문화적 성숙이다. 사람들의 습성과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좋으면 그런 나라는 문제가 없다. 한국인들은 잘 이해하지도 않고, 너무 빨리 결정을 하곤 한다. 그러고는 ‘희망’에 앞날을 걸어버린다.”

-우리는 참으로 각박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복지제도가 취약하니, 모든 것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각자 눈앞의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실업자, 노약자, 경제적으로 급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돌봐줘야 한다. 복지 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핵심은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기꺼이 세금을 더 낸다. 역대 많은 정부가 신뢰를 쌓지 못했다. 정부가 좀 더 진지하게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앞날을 장밋빛으로만 보지 말고, 그렇다고 비관만 하지도 말고 냉정한 눈으로 기본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대통령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방향을 만들고, 설득하여 동의를 얻고, 오랜 시간을 들여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수출 중심 소수 대기업으로 이익이 쏠리고 가계의 소득은 부진하다. 그 결과 내수가 살지 못해 경제가 악순환을 겪는 모습이다.

“재벌 중심 체제가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없다.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선대보다 못한 재벌 총수가 나올 수 있다. 재벌이 경영을 세습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들은 돈을 벌면 점점 중국 같은 외국으로 돈을 갖고 나간다.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내 중국에는 도움이 되지만, 우리나라에 그다지 도움 되지 않는다. 하지만 60년 걸려 형성된 지금의 체제를 고치려면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 재벌을 해체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대기업은 스스로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하려는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을 통해 인문, 과학의 수준을 높이고 국격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이해와 동의를 얻어 적어도 1미터만 확실히 움직이면, 그리고 국민이 이제 방향 전환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해결은 시작된다. 방향 전환이 성공하려면, 헌법을 바꾸는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지, 견해를 듣고 싶다.

“마르크스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살아 있다. 지금은 어떤 자본주의를 할 것이냐를 따질 때다. 물론 일본도 나름의 강점과 뚜렷한 문화를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현존하는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라인식, 즉 독일 모델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독일은 기업을 자본과 노동자가 협력해서 운영한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하는 대신 필요하면 저임금을 감수한다. 공존에 대한 공감이 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독일도 그런 체제를 만드느라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해왔다는 점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실패했고, 2차 대전 뒤에는 동서로 갈라진 나라를 다시 통일하느라 고생했다. 어떤 체제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한꺼번에 이상적인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가면서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낙관하는가?

“쉬운 일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조차 쉽지 않다. 한쪽이 득을 보면 다른 쪽이 손해 본다는 제로섬 게임으로 사태를 보면 답이 없다. 지금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 대학 나오면 다들 공무원 하거나 대기업 들어가려고만 한다. 한국에선 의견의 쏠림이 매우 심하다. 의견이 다르면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자기비판이 활발하더라. 지성인들이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낙관하지 않는다. 고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고 바른 정신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왔다. 교황이 얘기하는 것을 각자가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면, 교황의 말이 그렇게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시장개입 강조한 석학…초대 민선 서울시장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현대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경제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1968년부터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케인스 경제학을 국내에 소개한 1세대 학자다.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비판해왔다.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박세일 한반도재단 이사장,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88년 입각해 1990년까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고,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그뒤 1995년 정계에 입문해 야당인 민주당 공천으로 초대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하는 등 정치에도 꽤 깊숙히 참여했다. 그는 자신을“생각한 것을 실천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한문 고전에 능해 도산서원 원장(1993~1994년)을 지내기도 했다. 학술원 회원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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