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기업에 정책금융 대출 몰리나
2008~2012년 산은 퇴직 68명
STX·동양 등 대기업행
모두 대출일 3개월 앞뒤로 이직
대기업 부실땐 위험 그대로 떠안아
담보 많은 대기업·우량 중기에
지원 몰리는 ‘체리 피킹’도 원인
정책금융 역할 재정비 논의 필요
중소기업 위주로 업무 세밀화도
2008~2012년 산은 퇴직 68명
STX·동양 등 대기업행
모두 대출일 3개월 앞뒤로 이직
대기업 부실땐 위험 그대로 떠안아
담보 많은 대기업·우량 중기에
지원 몰리는 ‘체리 피킹’도 원인
정책금융 역할 재정비 논의 필요
중소기업 위주로 업무 세밀화도
정책금융의 대기업 집중은 왜 발생할까? ‘국가 기간산업 지원,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같은 기본적인 ‘명목’ 말고도 여러 속사정들이 대기업과 금융계 안팎에서 지목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퇴직자의 대기업 재취업과 얽힌 커넥션과 기관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대표적이다.
■ 퇴직자 재취업…로비 커넥션 정책금융기관 퇴직 임원들의 대기업 이직 논란은 한두 해 거론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을 통한 ‘로비 의혹’은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되고 있지만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정책금융공사(정금공)에서 퇴임한 최아무개 부사장의 사례를 보면 이는 더 요원해 보인다.
20년 넘게 산업은행(산은)에서 일했던 그는 2009년 정금공으로 옮겨 부사장에 올랐다. 그러다 지난해 정금공 퇴임과 동시에 현대그룹 자회사의 부회장으로 옮겨갔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은 정금공, 산은 등 정책금융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였다. 또 현대는 정금공과 3000억원대 소송을 진행중이기도 했다. 최 전 부사장은 피고에서 원고 쪽으로 옮긴 셈이다. 지난해 7월과 12월 현대그룹 쪽은 잇따라 승소했다. 이직 뒤에도 그는 정금공의 직원들을 만나고 다닌다. 정보 공유 문제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과 금융 지원을 따오기 위한 로비 창구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 전 부사장은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마켓(시장)에서 필요로 해 갔고 옮긴 시점에 소송은 마무리 단계였다. 정금공 근무 당시 현대그룹과 관계된 업무를 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는 “국책은행의 속성을 비공식적으로 얘기하는, 분위기만 알려주는 정도이지 (금융 지원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다. (정금공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개인적인 만남일 뿐이며 로비 창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그 ‘분위기 전달’만으로도 대기업은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2008~2012년 산은에서 퇴직한 38명이 신규로 대출·투자가 나간 36곳 회사에, 30명은 기존 거래 기업 21곳에 재취업했는데 모두 대출일 3개월 전후에 이직했다는 감사원 분석은 이를 뒷받침한다. 에스티엑스(STX·24명)나 동양(8명) 등 산은의 지원이 많았고 필요한 곳이 다수였다. 이들 대기업의 부실은 현재 산은 리스크(위험) 관리에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영입 임원을 대출의 청탁 창구로 활용할 수 있고, 정책금융기관은 임원들의 노후를 맡길 수 있는 그들만의 ‘선순환’ 구조가 정책금융의 배분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때론 정치권이 그 ‘선순환’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기업은 정치인을 창구로 쓴다. ‘정치권 ○○○○에서 전화왔는데 검토 좀 해봐라’, ‘신세진 사람이 있는데 알아보라’는 전화가 비일비재하다. 특정 대기업에 한도가 넘어도 대출이 안 되면 보증을 동원하고 컨소시엄(연합체)을 만드는 등 ‘되게 하는’ 스킴(계획)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짤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로비가 ‘되게 하는 스킴’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의원 보좌관들의 ‘재취업 창구’로도 쓰이고 있다.
■ 내부 구조의 한계…만연한 체리피킹 정책금융기관 내부 구조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세밀하지 못한 평가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무역보험공사는 영업부서 성과를 평가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지 않았다. 대기업의 보험료 수입이 훨씬 크기 때문에 대기업 1건을 인수했을 때 중소기업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더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 쪽 부서에 대한 실적을 평가할 때 신규고객 목표 달성도를 따지던 것을 2011년 폐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이 중소기업 실적이 적을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지난해 감사원에서 지적되자 기관들은 제도를 재정비했다.
대기업은 기업 평가 자체가 덜 까다롭다. 재무제표 등 공표된 자료가 쌓여 있고 담보도 많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대출이 나가기까지 평가도 어려울뿐더러 부실률도 높다. 정해진 기간 안에 실적을 내야 하는 실무진 입장에서 대기업이 더 수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창조경제’ 등의 구호 아래 정권 초마다 기술 평가로 중소기업의 미래가치를 적극 발굴해 금융 지원을 늘리자는 시도가 있어 왔지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때론 ‘인사’가 이런 한계를 고착화하기도 한다. 정책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수십년간 대기업 여신 위주로 해오던 조직이 중소기업 여신을 갑자기 늘리긴 어렵다. 중소기업은 평가도 힘들고 부실로 인한 문책 위험성도 높으니 중소기업 실적에 가점을 준다 해도 커버(회복)가 안 된다. 이 와중에 조직 내 인사팀이나 비서팀을 거친 ‘실세’들은 대기업 부서로 가곤 해 중소기업 쪽의 기피 분위기가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 ‘체리피킹’(좋은 것만 골라가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조병선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는 “정책금융기관이 대기업에만 집중하고 중소기업도 기존 실적이 좋은 우량 기업에만 몰리는 ‘체리피킹’을 하다 보니 시중 은행과는 경쟁이 겹치고 금융 지원이 있으면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중소기업은 조건 좋은 정책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까지 체리피커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업무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9년 만들어진 정책금융공사가 대표적이다.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은 ‘중소기업 자금 조달 원활’은 물론 ‘지역개발, 사회기반시설 확충,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금융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 광범위한 업무 설정으로 철강, 항공운수는 물론 거의 모든 대기업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다른 정책금융기관과는 물론 시중 은행과의 시장 마찰이 거론되는 이유다. 기관별 목표를 세밀화하고 정책금융 역할 자체에 대한 재정비가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경화 류이근 기자 freehwa@hani.co.kr
[기획 취재]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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