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중소 전시업체를 운영하는 허정 올리브컴 인터내셔날 사장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 공공전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③ 공공조달시장서 ‘포식’
중소 전시업체 사장 허정씨
중소 전시업체 사장 허정씨
생중계 보며 건 기대는 ‘잠깐’
모기업 후원 연계 대행사 공세에
중소기업은 하도급 업체로 전락
중기청, 전시부스 대기업 배제 정책
‘해외 전시’는 예외로 인정해 허탈
규정애매 전시산업발전법 고쳐
중기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해야 공공전시사업을 가장 많이 발주하는 코트라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외국 정부 및 국제기구 조달선도기업을 육성하겠다면서 해외 공공조달 지원책을 펴고 있지만, 허 사장은 코트라가 정작 국내에서 발주하는 해외 전시사업이 중소기업에 전혀 친화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밀라노 입찰) 제안서를 쓰려면 현지 답사도 다녀와야 한다. 최소한 1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괜히 1억원 들여서 들러리 설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허 사장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야외행사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생중계를 보면서 흐뭇했다. 7만명이 참석해 뮤지컬 <행복한 세상>을 비롯해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를 주관한 건 중소기업인 ‘연하나로 커뮤니케이션즈’였다. 과거 1998년, 2003년, 2008년 대통령 취임식을 삼성 계열의 제일기획과 엘지 계열의 에이치에스(HS)애드가 총괄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의미있는 변화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장에서 밝힌 “중소기업 육성 정책”의 솔선수범 사례처럼 보였다. 허 사장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본 700곳이 넘는 전시장치사업자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다들 공공전시사업에서 중소기업에 더 많은 몫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실 밀라노 엑스포 공고가 나기 한참 전부터 그는 불안불안했다. 소치 겨울올림픽 한국관을 현대차 계열의 이노션이 가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어차피 이런 큰 공공전시 일감은 거의 다 대행사로 불리는 대기업 계열사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일기획, 이노션, 에스케이플래닛(에스케이), 에이치에스애드, 대홍기획(롯데) 등이 그들이다. 그룹 내부와 민간 시장에 나오는 일감에 만족했던 이들은 5년여 전부터 공공전시사업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3000억원(일부에선 5000억~8000억원으로도 봄) 안팎에 이르는 전체 공공전시사업의 3분의 1가량을 이들이 가져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행사의 가장 큰 무기는 입찰에 응할 때 모기업과 연계된 후원(스폰서십)을 끼워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현대차는 에쿠스 등 고급 차량 수십대를, 삼성과 엘지는 티브이와 스마트폰 등을 제공한다. 여기에 입찰지원서를 심사할 때 기업의 신용도나 종업원 수, 과거 실적 등도 대기업이 공공전시를 따는 데 유리한 구조적 요인이다. 대행사가 공공전시사업을 따도 실제 공사는 실행사로 불리는 중소기업이 거의 다 하는 하청구조다. 허 사장은 “대행사는 전시와 홍보, 영상 등을 다 하도급 업체에 맡긴다. 입찰제안서도 이들이 다 작성하도록 하고 겉표지에 자기들 도장만 찍는 식이다. 그런데 전체 사업금액의 16%가량을 일종의 수수료로 떼간다. 그래서 우리는 대행사를 ‘자장면 배달부’라 부른다”고 말했다. 해외 공공전시에서 주관사인 대행사는 1~2명을 현지에 파견해 매니저처럼 전시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다. 대행사가 아니면 큰 해외 전시를 못할까? 허 사장은 “왜 못하냐? 2008년 스페인에서 열린 사라고사 엑스포를 우리가 했다. 72억원가량 되는 큰 사업이었다. 중소기업한테는 불안해서 못 맡긴다고 하는데, 그건 편견일 뿐이다. 중소기업이 해외 전시 맡아서 하다가 어디 문제가 된 적이 있냐?”고 말했다. 공공전시사업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긴 하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4월부터 전시부스 및 전시홍보관 설치 용역을 중소기업자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는 이를 전시장 부스 정도의 좁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전시산업장치협회 대외협력이사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협회와 함께 동반성장위원회에 찾아가서는 공공전시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중소기업청에 가서는 중소기업자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와 협회가 “대기업 계열사인 이른바 종합광고대행사들의 참여로 전문성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고사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으나,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더군다나 지난해 8월 중기청은 전시부스 및 전시홍보관 설치 용역에서마저도 ‘해외 전시’의 경우엔 중기 적합업종에서 제외한다고 공고했다. 이를 따지러 중기청을 방문했지만, 해외 전시의 경우엔 국내 조달로 보기 어렵다는 황당한 답변만을 들어야 했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에 전시산업발전법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법에 전시의 개념이 애매하게 된 탓에 부처마다, 정책마다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산업발전법을 고쳐 “문화 및 집회시설과 관련된 기획, 설계, 전시물 제작, 설치 분야 및 홍보 운영 분야”를 아우르는 공공전시 일반을 중기간 경쟁 제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그가 계속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행사가 원칙적으로 공공전시사업에 들어오기 어렵게 하더라도 또다른 난제가 있다. 케이비에스(케이비에스아트비전)나 엠비시(엠비시미술센터), 에스비에스(에스비에스아트텍) 등 방송사들은 자회사를 차려 중소기업으로 등록해, 공공전시사업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허 사장은 “우리는 이들을 ‘가면 쓴 난쟁이’라 부르는데, 합법적 영역에 들어와 있어 어떻게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는 어렵다. 그렇다고 대기업에 줄 서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전업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 #235] ‘말로만 경제민주화’ 대기업으로 나랏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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