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이강국의 경제산책
얼마 전 발표된 교황의 권고문이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재의 자본주의는 사람을 죽이는 폭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독차지하고, 많은 민중들이 힘겨워하는 현실을 교회도 외면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이 진보를 가져다준다며 교황의 메시지를 애써 무시하고, 우익들은 교황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며 눈을 흘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호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며, 교황은 올해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와 함께 끊임없는 위기와 불평등으로 고통을 받았고, 카톨릭 교회는 민주주의를 짓밟는 독재정부에 침묵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몸소 겪은 그이기에 교황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교황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고 많은 이들의 삶은 불안해졌지만, 현 정부는 여전히 시장만능주의를 굳게 믿고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의 목소리가 높고, 정부는 복지를 크게 늘리는 대신 기업 편을 들며 노동자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또한 공기업은 비효율적이라는 맹신에 사로잡혀 철도 산업을 민영화하는 정책의 첫발을 떼려 합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공기업을 자본에 넘기는 것은 금물이며, 많은 나라에서 철도나 전기 같은 산업의 민영화와 규제완화는 실패로 끝났는데도 말이죠. 사실 코레일의 막대한 적자와 부채도, 특히 화물운송의 낮은 운임 그리고 고속철도 건설 등과 관련된 정책실패의 탓이 큽니다. 우리 공기업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와 같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제대로 된 경영체제부터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철도노동자의 파업에 강경대응하며 공권력으로 억누르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활약했던 바로 그 공권력 말입니다.
이제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무관심한 스스로를 반성하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대학생의 물음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취업난에 힘겨운 청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가난에 빠진 노인, 그 누구도 안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스스로 안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뜻을 모으는 행동이겠지요.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가 들불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시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하셨고, 교황도 청년들에게 최선을 다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정부는 민주주의의 회복과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를 요구하는 성난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 모두 아기예수가 태어난 뜻을 생각하며, 교황의 메시지를 되새기고 서로 안녕한 지 따뜻한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캐롤이 아니라 함성이 가득한 거리에서 함께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겠죠.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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