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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세금 거의없는 저소득층도 “세금폭탄”…재분배 효과 잘몰라

등록 2012-10-11 20:34수정 2012-10-11 20:35

[경제민주화와 나]
⑤ 유석철씨 부부의 세금 이야기
한해 재산세 20만원이 전부이고
근로소득세도 전혀 안내지만
“세금 너무 많다” 왜곡된 인식 커
노령연금은 월 9만4천원 수령

한국 조세부담률 19.8%로
OECD 평균 25% 크게 밑돌아
낮은 세부담 혜택은 부자몫
소득 불균형 문제 ‘증세’로 풀어야

서울 중랑구에 사는 유석률(가명·69)씨가 한 해 동안 내는 세금(직접세)은 대략 20만원 수준인 재산세뿐이다. 절대 액수로 많아 보이지 않음에도 “세금이 너무 많다”는 말이 입버릇으로 굳어져 있다. 유씨의 부인 이영숙(가명·64)씨는 “없는 사람에겐 큰 부담”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1주일에 4일을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월수입이 60만원 수준이어서 근로소득세 납부 대상에선 제외돼 있다.

남편 유씨는 늦게 신고된 호적 탓에 지난해부터 매달 9만4000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두달치 노령연금이 일년치 재산세에 버금가지만 유씨의 눈엔 세금과 노령연금 사이의 관계가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돈을 내면 다시 돌아오잖아. 고용보험은 2년 전엔가 할멈이 직장을 그만두면서 타먹었지만 세금은 돌려받는다고 생각 안 해.”

주변의 노인들도 비슷한 생각이란다. 이씨는 “세금 하면, 너무 많이 나왔다는 얘기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저소득층마저 ‘세금 폭탄론’의 편에 서는 기이한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왜곡된 인식 탓에 세금폭탄이 서민들한테 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기업과 개인에게서 더 많이 걷어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세금의 기본 구조다. 유씨 부부가 금시초문이라고 말한 경제민주화가 부부의 납부 세금과 깊게 관련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에도 이런 내용이 잘 담겨 있다. 헌법 119조2항엔 국가의 역할 중 하나로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시장에서 설령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소득이 극소수에게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재분배 수단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유씨가 그리 불편해하는 세금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세금의 재분배 기능이 아주 미약한 게 현실이다. 유씨가 노령연금 혜택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돈”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의 ‘조세와 이전지출(실업수당 등)’로 인한 소득의 불평등(지니계수 기준) 감소 정도는 2008년 8.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31.3%)의 약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러한 낮은 소득재분배 효과는 세금을 적게 걷어 조금 돌려주는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유씨가 2010년까지 8년 동안 한 기업체 연수원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월 100만원, 부인 이씨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전환하기 전 종일제로 월 120만원씩 벌 때도 부부는 소득세를 내본 기억이 전혀 없다. 유씨 부부처럼 월급을 받으면서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계층은 전체 근로자의 40%에 이른다. 이는 미국·일본·캐나다 등의 20% 안팎에 견주면 높은 수치다.

유씨 부부보다 형편이 나은 중산층은 어떨까? 식품 가공업체 간부인 류아무개(41)씨는 서울 강북에 약 100㎡ 크기의 중형 아파트를 갖고 있다. 지난해 급여 총액 5456만원 가운데 2.3%인 125만원을 근로소득세로 낸 그는 “솔직히 세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낮은 세부담의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자다. 우리나라에서 조세가 소득 불평등도를 거의 개선시키지 못하는 것도 결국 부자들이 내는 세금의 몫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2010년 전체 근로소득자 가운데 상위 10%는 평균 소득이 1억300만원에 이르지만, 소득의 11.1%를 세금으로 냈다.

글로벌 세금 전문 자문업체인 케이피엠지(KPMG)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미화 10만달러(약 1억114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실효세율(소득세/소득)은 1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부자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최고세율(38%) 대상자는 근로소득자 1430만명 가운데 3만여명뿐이다.

이렇게 세금을 내는 사람도 적고, 그나마 내는 사람도 적게 내는 구조는 낮은 조세부담률(조세/국내총생산)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약 25%보다 크게 낮다. 현 정부 들어서 감세로 조세부담률은 이전 정부 때보다 낮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를 추진하면서 “혜택의 70%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감세의 정당성을 옹호했지만,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지난 4년간 약 64조원에 이르는 감세 혜택의 60% 이상이 대기업과 부자의 차지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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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기업의 혜택이 컸다. ‘가난한 개인, 부자 기업’이란 말이 나올 만큼, 우리 사회의 부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소수 재벌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들의 세부담은 낮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2010년 15조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이 중 약 11.9%만을 세금으로 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장)는 “이는 지방세를 포함한 법인세 최고세율(24.2%)은 물론 ‘최저한세율’(공제·감면을 받더라도 내야 할 최소한의 세율) 14%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해 실제로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오이시디 평균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유씨 부부는 없는 살림에 당장 내는 세금이 아깝다고 하면서도, 부자들도 더 낸다면 ‘증세’를 꺼리지 않겠다고 했다. 부인 이씨는 “있는 사람이 더 낸다면 우리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세금을 ‘복지’로 되돌려받는다는 전제에서란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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