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8월22일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노조 건물 앞에서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제민주화와 나] ④ 비정규직 정명철씨의 좌절
“한달에 보름 밤샘노동…7년을 일해도 사내하청”
“한달에 보름 밤샘노동…7년을 일해도 사내하청”
성실히 일하면 정규직 된다더니…
“월급쟁이가 가장 편할 것 같아
지방 사내하도급 업체 갔지만
임금은 절반…난 미련한 곰
관심 갖는 여자도 없어요” 노동자 4명중 1명 ‘사내하청에서…’
대기업, 인력 이원화전략 한몫
“삼성에도 삼성전자-후자 있어”
대선후보 노동시장 개혁 뒷전
재벌에 일자리 기대려고만 해
군 복무 시절 정명철(가명·34)씨는 ‘곰’으로 불리었다. 어지간해선 게으름을 피우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제 할 일을 묵묵히 그것도 성실하게 임했던 데 따라온 별명이었다.
제대 후 정씨는 가스 배달, 택시 운전, 옷가게 등을 하다가 2006년부턴 경북 구미 소재 한 대기업의 사내하도급 업체에 들어갔다. 월급쟁이가 가장 마음 편할 것 같아서였다고 했다. “돈 모아 장가갈 거다”라며 늘 웃던 그의 얼굴에 언제부터인가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 늦은 밤에 불쑥 전화를 걸어온 그의 목소리에 술기운이 느껴졌다. “젊은 애들이 서울로만 가려고 하지 시골에 오려고 하나요. 충원이 되지 않으니 일만 더 늘었어요.” 그는 한 달에 보름 정도는 공장에서 밤을 꼬박 새운다고 했다. “성실히 일하면 정규직 된다고 했는데, 벌써 7년이 넘었어요. 하청이어서 그런지, 관심 갖는 여자도 없네요. 정말 난 미련한 곰인가 봐요.”
■ 만연한 사내하청 노동 2010년 고용노동부가 대기업 1939곳의 고용 실태를 조사해 내놓은 결과는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왔다. 41.2%의 대기업에서 사내하도급을 활용하고 있고, 사내하도급 노동자 수가 전체 노동자의 24.6%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내하도급은 명목상 사내하도급업체의 정규직 직원이나 실질적으로는 원청업체의 비정규직 직원의 성격을 지닌다. 도급 계약 해지에 따른 만성적인 실직 위험에다 원청 정규직 대비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내하청이 만성화된 나머지 일부 기업들은 불법성을 인정받고도 몽니를 부린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사업장 내 전체 고용 인원의 20% 가까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우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불법파견(불법적 파견근로 사용) 의혹이 짙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전형적으로 중심-주변의 이원적 인력 전략을 구사한다”며 “핵심 인력은 고임금과 복리, 높은 고용 안정을 보장해주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주변 인력은 비정규직이나 파견, 사내하도급 등 간접 고용을 활용한다”고 분석했다.
■ 인재경영의 후폭풍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4년 3월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말한 뒤 그 후에도 유사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재계에선 ‘이건희의 천재론(혹은 천재경영)’이라고 불렀다. 삼성 계열사 한 간부는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존재한다”며 “삼성은 좀더 촘촘한 피라미드형 인사 관리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내이사 평균 연봉은 109억원, 일반직원 평균 연급여는 7760만원이다. 계열사 삼성전기의 임원과 직원 평균 연급여는 각각 13억4000만원, 6300만원이다.
이런 삼성의 인사 구조는 재벌 대기업의 중심-주변의 이원적 고용 전략을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사전략이 지금까지 재벌 대기업의 경쟁력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초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이 이익공유제(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사들과 공유하는 제도)를 제안했을 때 주요 대기업은 “경쟁력 상실”을 우려했다.
■ 재벌에 또 일자리 의존할까? 올해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쪽만 ‘사회적 대타협론’, ‘동일가치 노동, 동일 임금’ 등 기본 얼개라도 제시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원칙론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향은 아직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대신 여전히 재벌에 일자리를 의존하는 시각이 일부 후보들에게서 엿보인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4일 정치권 일부에서 경제민주화 방안 중 하나로 재벌 대기업이 형성하고 있는 순환출자형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경우엔 10조원 이상이 들어야 한다. 그 10조원을 일자리에 주는 게 국민에 더 도움이 되는 거지 그걸 다 소급해서 끊으라고 많은 자금을 쓰는 게 맞느냐,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시각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국가 과제로 부상하면서 거의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했다. 한 예로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공정사회 화두를 꺼내 재벌 대기업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재계와의 만남 자리에선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며 재계에 일자리 창출을 주문하거나 일자리 창출을 치하했다. 한국경영인총협회의 한 임원은 “대기업에 일자리 창출은 큰 부담이면서도 (재계 비판에 대한) 든든한 방어막”이라고 말했다.
정명철씨가 털어놓은 괴로움을 들은 뒤 건넬 말은 많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도 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개선한다고 하니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봤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피곤해서 신문이나 티브이(TV)는 잘 안 봐서 (경제민주화가)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그거(경제민주화) 되면 저 같은 사람도 정규직 되고 장가도 갈 수 있는 건가요?”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이명박·오세훈 시장때 임원 20% ‘한나라 경력’
■ 방위사업청 “중소기업 육성제도” 홍보했는데…방위산업 지원금 80% 대기업 독식
■ 이대호 귀국 “올시즌 점수는 50점”
■ 불산 검출 미미?…환경부 “안전하다”, 주민들 “못믿겠다”
■ 싸이-김장훈 ‘화해 러브샷’
■ 대학 다녔다고 손가락 잘리고… 결혼지참금 문제로 300명 피살…
■ [화보] 화해의 소주 원샷한 싸이와 김장훈, '캬!
“월급쟁이가 가장 편할 것 같아
지방 사내하도급 업체 갔지만
임금은 절반…난 미련한 곰
관심 갖는 여자도 없어요” 노동자 4명중 1명 ‘사내하청에서…’
대기업, 인력 이원화전략 한몫
“삼성에도 삼성전자-후자 있어”
대선후보 노동시장 개혁 뒷전
재벌에 일자리 기대려고만 해
■ 이명박·오세훈 시장때 임원 20% ‘한나라 경력’
■ 방위사업청 “중소기업 육성제도” 홍보했는데…방위산업 지원금 80% 대기업 독식
■ 이대호 귀국 “올시즌 점수는 50점”
■ 불산 검출 미미?…환경부 “안전하다”, 주민들 “못믿겠다”
■ 싸이-김장훈 ‘화해 러브샷’
■ 대학 다녔다고 손가락 잘리고… 결혼지참금 문제로 300명 피살…
■ [화보] 화해의 소주 원샷한 싸이와 김장훈, '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