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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재벌들은 죄지어도 특별사면…반칙 통하니 살맛 안나”

등록 2012-10-08 20:48수정 2012-10-0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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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나
③ 김서민씨의 박탈감 심한 세상
소주 한 잔을 털어넣은 김서민(가명·41)씨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선술집 한켠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그룹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참 나쁘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꿈이 허물어진 것처럼 허망하네.” 웅진그룹 쪽의 ‘도덕적 해이’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흔치 않은 샐러리맨의 신화가 또 한편 저물었다는 데 낙심한 듯 보였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만 이제 샐러리맨은 샐러리맨일 뿐이지. 샐러리맨이라도 유지하면 ‘장땡’인 거지.”

김씨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와 그리 어렵잖게 웬만한 회사에 자리잡았다. 적당한 연애 끝에 결혼했고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주어진 일을 성실히 다하면 그럭저럭 한생을 잘 살아냈다 할 수 있으리라 여겨왔다. 그러나 직장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아내 머리가 희끗해갈수록 뭔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커져간다고 했다. 직장생활은 이제 길어야 10년 남짓 남았고, 아이들의 학원비도 빠듯한데 대학등록금은 제대로 댈 수 있을지, 아내와 노후는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 “몇년째 대출 갚기는 버거운데 집값은 계속 떨어지고….”

그의 불안은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 한 몸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벌 수 있을 때 아끼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자신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했다. “왜 요즘 부모들이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만나야 한다’고 하겠어? 왜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하겠냐고?” 그의 목소리는 더 커져갔다. 먹고살기 바빠 신문도 뉴스도 제대로 안 보던 그는 올해 들어 재벌빵집 문제를 시작으로 ‘경제민주화’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대선 앞두고 너도 나도 떠드는 통에 안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열심히 살아도 해결안돼
대출·교육비·노후 어떡할지…

조상 잘 만난 재벌 2·3세는
능력 없이도 기업 물려받아
왕족처럼 살며 승승장구

정당한 규칙이 지켜지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내 노력의 의미가 있지 않나

그는 “재벌이 이런 문제의 핵심”이라고 단언했다. “다섯살짜리가 수백억원어치씩 주식을 갖고 있는 게 정상이냐, 세금이나 제대로 내고 물려받았겠냐”고 되물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100만달러(약 11억원)어치 이상 주식을 가진 미성년자는 82명이다. 요즘 재벌들은 3~4세 승계는 거의 마무리 지었고, 이젠 4~5세들에게 물려줄 준비를 벌써부터 하는 게 대세라고 재계에선 말한다. 일찍부터 조금씩 주식을 증여하면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것도 미성년 주식부호가 늘어나는 요인이다.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산 상속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 지배까지 대물림하는 데 김씨는 더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재벌 2세, 3세라는 이유만으로 능력도 없는데 회사를 그냥 물려받는 것도 다반사 아니냐. 넘쳐나는 돈으로 유학 다녀오고, 요즘엔 외국인 학교에서 ‘국내 유학’도 한다면서. 그러곤 할아버지, 아버지 회사에 들어와서는 별다른 실적 없이도 임원까지 순식간에 승진하는 걸 보면 당연한 일로 여기면서도 때때로 분노가 치밀어. 누군 언제 잘릴지,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누구는 조상 잘 만나 왕족처럼 살고.”

경제개혁연구소 집계로, 재벌 총수 일가는 입사 뒤 임원이 되기까지 평균 6년 반 정도 걸리는 반면, 일반 직장인은 임원까지 올라가는 경우만 따져도 21년 이상 걸린다. “젖먹이 주식 부자는 남의 나라 얘기라 해도, 20~30대 임원이랑은 같은 회사를 다니고 사회

생활도 같이 하는 거잖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그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일하고 머리 좋아서 돈 많이 벌고 그래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상속하고 한다면 뭐가 문제겠냐”며 “그런 일들이 정당한 규칙을 지키지 않고 벌어지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의 억울함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회장들은 회삿돈을 빼돌려 쓰고 주식을 싸게 발행해서 아들한테 넘겨주고 또 비자금 만들어 정치인들한테 로비해도 처벌받는 꼴을 본 적이 있나. 하도 뻔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보니까 이젠 서민들도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더 문제지.”

실제로 1990년 이후 10대 재벌그룹 총수들은 모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최종적으로 실형을 산 경우는 전혀 없다. 모두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그것도 대부분 특별사면으로 마무리됐다. 김씨는 “힘있는 사람들이 반칙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누가 규칙을 지키려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김씨는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나나 내 가족과 어떤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최소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반칙이 없는 사회라야 내 노력과 아이들의 미래가 의미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경제가 민주화되면 재벌이든 나 같은 소시민이든 죄를 지으면 똑같이 벌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 대가를 보장받고 또 아이들도 이런 것들을 보고 배우고 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당장 내가 당장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학원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또 노후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지만, 사는 맛이 없진 않을 것 같아. 물론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도 더 잘 보장되고 급여도 좀더 오르고 아이 학비 걱정, 노후 걱정 안 할 정도로 복지가 될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정치에 혐오감을 내비쳐온 그였지만 이번에는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서민들을 정말 위할 수 있는 후보자가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다들 경제민주화를 떠드는데, 정확히 뭘 주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재벌의 문제를 개혁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서민들 잘살게 하는 데도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명확해. 내가 갤럭시폰 쓰고 쏘나타 타고 다니면서 이건희·정몽구 배 불리는 짓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 좀 이상하잖아. 불공평하고 억울한 것 없어져야 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 돼야지.”

최근 웅진그룹 사태를 “마지막 서민의 희망이 우스꽝스럽게 배신당하고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한 그는, “연말 대선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하려 한다”고 했다. “요즘 이민들 많이 간다던데, 미국이나 호주는 못 가도 제주도 이민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귀농이든 귀촌이든….” 소주잔을 내려놓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복잡해 보였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유전무죄’ 법으로 막겠다는 정치권

새누리 “경제범죄 집행유예 방지”
민주 “총수일가 상속·증여세 확대”
안철수 “내부거래·편법상속 안돼”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내년부터는 김서민씨와 같은 이들의 불만은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어 보인다. 각 대선후보 진영에서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일감몰아주기 규제, 불·편법 상속 규제 등을 일제히 내세우고 있어서다.

새누리당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공정한 형사처벌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곳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다. 이미 지난 7월 경제범죄 처벌 강화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을 보면, 5억원 이상의 경제범죄를 저지를 경우 재벌권력이라 해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다. 감형을 통한 집행유예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을 개정해, 업무상 배임·횡령 처벌의 최소기준을 7년 이상으로 올렸다. 현재는 3년 이상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정해져 수십억, 수백억대 횡령을 하더라도 법원이 형기를 2분의 1 줄이면 3년 이하로 형기가 떨어져 집행유예로 풀려 나오곤 했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금지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다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명확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는 한계를 띠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보다 앞선 6월 재벌개혁 4대 입법을 발의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나고 업무상 배임·횡령 등 경제범죄에 대해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을 규정했다. 현행 세법상 과세에서 더 나아가 일감몰아주기에 대해선 물량 거래 비율을 모두 적용해 과세하도록 했다. 또한 특경가법 개정안을 보면, 업무상 배임·횡령죄의 특례조항을 신설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아무리 거액의 배임·횡령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를 받아온 관행을 막겠다는 것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대기업집단법 제정을 통한 내부거래 및 편법 상속 단호 대처 등의 재벌개혁 정책의 큰 틀만 내놓은 상태다. 구체적인 정책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안 후보는 “재벌 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내부거래 및 편법 상속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는 등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범죄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엄정하지 못한 것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진철 기자

[관련 영상] 장하준등 진보보수논객 5인의 복지국가 대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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