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고소득층 중심 정책
사회 양극화·이중구조 키워
감세 멈추고 고용·복지 늘려
‘선순환 성장’구조 만들어야
트리클다운(하향식) 정책은 1980년대부터 시작한 세계적 신자유주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 말기,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이런 흐름의 끝자락을 붙들었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감세를 강행했고 규제 완화, 고환율 정책, 노동 유연화, 임금상승 억제 등 친기업 행보를 계속했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20여년간 득세하던 신자유주의에 큰 타격을 주었다. 금융기관에 대한 과도한 규제완화 뿐 아니라, 양극화로 소득이 늘지않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부채 소비와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게 된 것이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트리클다운 이론을 전면에 내놓고 주장하는 흐름은 매우 약해졌다”고 말했다. 부시의 ‘트리클다운’에 맞서 ‘바텀업 체인지’(bottom up change)를 내세운 버락 오바마 정권이나 ‘격차 사회’ 시정을 내건 일본 민주당 정권의 출범은 이런 변화를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근본적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도실용’이라는 슬로건 아래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 등 몇가지 친서민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후 더 진전된 정책은 없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금융위기 이후에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책, 경기부양을 위한 큰 정부, 녹색산업으로 바뀐 개발주의 등이 뒤섞이면서 엠비노믹스의 정체성이 무엇이지 종잡기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 사이 우리사회 각 부분의 양극화와 이중구조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 발언에서 “소득격차 확대, 내수·수출 불균형,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경제 시스템의 이중구조가 심화하는 것이 큰 걱정거리다”고 말해 정부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용직 구직자들이 지난해 겨울 서울 구로동 네거리 주변 인력시장에서 구인 중개업체의 연락을 기다리며 서성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극화와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함께가는 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수도권, 고소득층 등 현재 생산성이 강하고 특권을 누리는 부분에 지원을 해준 뒤 성장과실을 나누겠다는 전략이지만, 트리클다운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제는 노동자, 비정규직, 저소득층, 중소기업, 지방 등 우리 사회 취약부분을 지원해 이들의 생산성 향상이 전체 경제의 성장률 제고로 이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해온 부자 감세를 중단하고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지금 필요한 것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해서 복지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것”라고 말했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가 성장하고 가구 평균소득이 늘어나도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빈곤과 불평등 문제의 자연스러운 해법이라는 고정관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며 “차상위 계층에 대한 복지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주의에서 ‘고용 우선주의’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장동구 한국은행 연구위원은 최근 ‘성장, 임금과 고용의 인과관계’ 보고서에서 “고용이 1% 늘어나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약 2% 정도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용 증가→소비 증대→성장 확대→고용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성장이 아니라 고용을 출발점으로 보자는 것이다.
수출주도 성장 체제의 수출·내수 동반성장 체제로의 전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 하청관계 시정 등도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제1부 <끝>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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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수 효과(trickle down)란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완화해주면 이들이 투자와 소비를 늘려서 전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 그 과실이 중산층·저소득층, 중소기업에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하향식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 분수 효과(bottom up)란
중산층과 저소득층,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늘리면 이들의 생산성이 올라가 전체 경제의 경쟁력도 제고된다는 이론이다. 이들은 소득이 소비로 연결되는 정도가 고소득층보다 크기 때문에, 이들의 소득 증가는 소비진작 효과가 더 크다. 상향식 경제학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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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희 기자
shan@hani.co.kr